“안희정 날아갔고, 이재명 잡고, 이제 박원순이 남아있다고 한다”(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 “(여권에서) 안희정 전 지사와 이재명 지사를 날려서 박원순 시장에게 ‘까불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
지난달 19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발언한 내용이다. 지난해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다퉜던 후보들이 연이어 위기를 맞으면서 위 발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선 이러한 ‘여권 잠룡 잔혹사’가 정치에서 경쟁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이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여권 내 파워게임이 서서히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초 시작된 ‘잠룡 잔혹사’…안희정부터 박원순 까지
잔혹사의 서막을 연 것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였다. 지난 3월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미투’ 폭로를 하면서 여당은 대형 악재를 맞았다. 안 전 지사는 지난 8월 14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29일 항소심을 앞두고 안 전 지사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경기도 모처에서 포착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모습을 감춘 그는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잇단 대형스캔들에 휘청이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6·13 지방선거 당내 경선 때부터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소유 문제를 두고 시달렸다. 지난 4월 초 경선 상대였던 전해철 의원이 고발한 데 이어 8월 전당대회에서도 ‘이재명 스캔들’은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 지사는 선거 직전까지 배우 김부선 씨와의 폭로전, ‘친형 강제입원’ 등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지만 자신을 둘러싼 이슈들을 정면 돌파하며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지난 17일 부인 김혜경 씨가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소유주라는 경찰의 수사결과가 나오면서 상황은 또 다시 급변했다.
이 지사는 경찰 수사결과를 적극 부인하면서 “경찰이 진실보다는 권력을 선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검찰의 기소 여부와 재판 결과 등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경우, 이 지사도 안 전 지사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최성 전 고양시장은 3선 출마선언을 했지만 경선을 하기도 전에 공천에서 배제됐다. 당시 한 시민단체가 최 전 시장의 정무보좌관이 선거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을 두고 최 전 시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최 전 시장은 지난달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함께 고발된 정무보좌관도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채용비리 국정조사도 ‘박원순 청문회’ 되나…여권 파워 게임 본격화
지난해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는 아니었지만 차기 여권 내 유력 주자로 분류되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최근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21일 5당 여야 원내대표가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에 합의하면서 사실상 ‘박원순 청문회’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당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며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국정조사는 감사원의 감사와 권익위의 조사결과를 놓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일이었으나, 강원랜드 권력형 비리에는 눈감으면서 마치 권력형 비리라도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민생을 인질로 삼은 야당의 정치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러한 ‘여권 잠룡 잔혹사’는 정치에서 경쟁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이 겪는 공통의 운명이라고 설명한다. 민주당 내 한 3선 의원은 “정치에서 경쟁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이 겪는 공통의 운명”이라며 “특히 선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표를 나누고 경쟁하다보면 그 갈등의 여운이 계속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유독 이 지사에 대해 가혹한 것은 친문 진영의 단결된 지지층 눈밖에 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래 권력을 두고 여권 내 파워게임이 이미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권력 쟁취 과정에서 강력한 경쟁 관계였던 이들이 가장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가깝거나 청와대와 내각에 있는 인사들이 여권 내 권력투쟁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