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낮은 자를 위해 사역했던 김건호 목사가 51세를 일기로 22일 세상을 떠났다. 대학생 시절 조직한 ‘도시빈민선교회’를 시작으로 낮은 자를 위한 사역을 하던 그는 노숙인의 자활협동조합인 ‘노느매기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삶의 현장에서 사역하던 그는 “가난한 자와 만날수록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지난 7일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의 한 병실에서 만난 김 목사는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기자에게 “외투를 입고 찍자”고 말했다(본보 13일자 29면). 아파 보이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장암세포가 요로로 전이돼 고통이 큰 가운데에서도 그는 “네가 만난 수많은 이들이 걸리는 암인데 왜 너라고 안 되느냐고 하나님께서 말하는 듯하다”며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장로회신대 86학번인 김 목사는 신입생일 때부터 자원봉사를 위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을 찾는다. 빈민촌에서 매주 한 차례 야학교사로 봉사했던 그는 ‘도시빈민선교회’라는 동아리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1988년 왼쪽 눈의 망막이 박리되며 실명의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그는 끊임없이 빈민을 찾아 나섰다.
대학 졸업 후 신림동 신양교회 부교역자로 지역 아동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했던 그는 2002년 일산두레교회(현 사랑누리교회) 개척 멤버로 사역했다. 교회를 나오며 일반적인 교회의 개척보다는 시민들에게 꿈을 주는 새로운 사역을 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2011년 영등포산업선교회(총무 진방주 목사)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보호센터 ‘햇살’을 맡는다.
햇살에서 예산을 집행하며 이를 바라는 노숙인들의 시선을 접했다. “내가 이 일을 열심히 했는데 왜 나에게는 어떤 보상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도 들었다. 그러기에 햇살을 나와 노숙인 자활을 위한 ‘노느매기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함께 일해 물건을 만들어 팔며 그 돈으로 함께 밥상을 나눴을 때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모세가 왕으로서 권력을 갖고 이스라엘을 해방하려 했다면 안 됐을 것”이라며 “사람들과 같은 높이에서 오랜 시간 신뢰하며 기다릴 때 변화는 일어난다”고 말했다.
최근까지는 노숙인들의 삶을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위암으로 고통받던 노숙인을 면회한 자리였다. 그의 임종을 바라보며 “막상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올해 안에 노숙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출판하고자 했다. 김 목사는 “우리 삶을 함께 나누며 관계를 이룰 때 그 삶은 무의미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계 속에 자신의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영혼도 얘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사 11:6~7)
김 목사가 꿈꾸는 세상의 성경 속 모습이다. 그는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땅에 충만한 세상을 꿈꾼다”며 “봉사자가 아닌 친구의 입장으로 가난한 사람과 노숙인을 돌볼 때 관계 속에 있는 하나님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밥을 빨리 먹고 누군가는 천천히 먹습니다. 빨리 먹는 이가 조금만 천천히 기다리며 먹을 때 밥상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나니아연대기라는 영화에서도 옷장으로 들어가야만 연대기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마음속 문을 조금만 열어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