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초인의 <눈 뜬 자들의 도시>는 동시대의 사회구조와 정치현상으로 연결해 현대적인 색감으로 무대를 채색시켰다. 배우의 움직임과 장면을 구사하는 상상력 상자에서 쏟아지는 재해석의 구조물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권력의 민낯을 들추어내고 정치현상을 투영시킨다. 거추장스러운 양식들을 녹여 내리고 허구의 실제성을 부여한다. 연극의 재현성의 경계와 그 경계에서 상상력으로 조립된 연극의 실제성은 관객과 거리감을 좁히고 극적행동은 즉시적 발화를 통해 ‘살아있음’으로 유기적인 표현성을 회복한다. 박정의 연출이 원작 소설을 수용하고 있는 것은 표현의 ‘입체성’이다. 원작을 충실하게 쫒아가면서도 무대로 환기시키고 토해내는 시선과 표현의 방식은 그로테스크한 몽환적 이미지, 극대화 된 움직임, 놀이성, 강렬한 캐릭터와 코미디아델아르테 요소를 융합해 소설 틈새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원작의 원형은 그대로, 살점은 조롱과 풍자로 비틀고....
올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두 작품 <스프레이>(아르코 소극장), <눈 뜬 자들의 도시>(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가 주목 받았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국내초청작으로 참가한 김경욱 원작 <스프레이>(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극중 인물(709호 남자)를 통해 인간의 강박증, 불안과 분노, 관음, 도벽의 욕망이 이웃으로 전이되는 병리현상을 배우들의 움직임, 3D영상, 사각프레임, 나레이션만으로 소설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극중 인물은 그로테스크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장면과 공간을 채우며 한국 사회(아파트 층간소음과 살인· 폭력· 사회분노· 투신자살 등)에서 일어나는 섬뜩한 사회현상을 원작(김경욱) 텍스트의 살점을 입체적인 무대 언어와 섬세한 움직임과 표현으로 채웠다.
두 번째 무대는 노벨문학상 작가인 주재 사라마구의 <눈 뜬 자들의 도시> (2018. 11.9~18·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활성화 지원 사업 선정 작품으로 사라마구의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1995)에서 전염병처럼 일어난 시민들의 실명사태 이후 4년 후 한 지방도시에서 벌어지는 선거이야기다. 두 소설에서 일어나는 배경은 현실과 비현실적인 도시의 경계 있다. 꿈의 도시에서 일어 날 것 같은 ‘환영의 도시’ 이거나 살아가고 있는 ‘실제의 도시’ 로 연결시키는 심층적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한 국가에서 폭력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현상 일수도 있으며, 부패한 정부와 권력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일수도 있다. 작품은 ‛실명’(失明)이라는 전염병이 도시 전체 시민들로 퍼진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전대미문의 국가 재난 사태인 ‘전 국민 실명’ 사태에도 정부시스템은 기능을 상실한다. 전염을 우려한 정부는 시민들을 정신병동에 격리시키고 군인은 ‛눈 먼 자’ 들이 다가오면 사살한다. 정의와 진실은 어두워지고 부패한 도시는 구원의 인간을 바라보지 못함으로써 도시는 살육의 현장으로 폐허가 된다. 유일하게 눈을 뜬 한 여인(의사아내)은 병원에서 자행되고 있는 폭력과 약탈을 견디지 못하고 한 남자를 가위로 찔러 죽인다.
국가 공동체는 붕괴되고 고장난 국가시스템의 도시는 약탈과 폭력으로 뒤엉키며 광기와 혼란의 도시로 몰락한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추악한 권력의 민낯을 비추고 국가 폭력으로 시민사회는 몰락하게 된다. 저항은 무기력해지고 함몰된 인간성은 타자를 타격하는 살인과 폭력, 살육의 도시로 퍼져가는 괴기스러운 도시로 변한다. 위정자들이 판을 치고 재벌, 민중, 노동자들이 평등해지는 눈 먼 세상이다. 사라마구의 경고는 여전히 동시대를 투영한다. 부패한 권력과 반민주적인 국가폭력이 교과서로 박제되어 있는 정치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경고방송’을 한다. 비 인권적이고 부패한 국가권력 시스템에서 새어나오는 정의와 진실은 영토에 함몰되어 있어 있고, 저항과 침묵은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 눈뜬 자들이 살아가는 시민들은 백지투표라는 침묵을 들고 깨어난다.
연극은 4년 전 시민 전체로 실명 전염병이 일어난 지방의 한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그 후 권력은 우익정당으로 권력체계가 바뀌었고, 재앙을 겪은 국가는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 시민 80% 이상이 백지 투표를 던졌다. 국가는 시민들을 향해 비상사태와 계엄령을 선포하고 ‘보이지 않는 손’ 색출 작전에 나선다. 고문과 폭력이 난무하고, 정부조직을 지방도시에서 철수 시켜 수도를 폐쇄하고 폭탄테러까지 발생한다. <눈 뜬 자들의 도시>는 여전히 살아 숨을 쉬고 있는 시민사회의 깨어있는 도시의 불빛을 따라 이미지와 움직임, 영상으로 시대를 힘 있게 그려낸다.
‛상상력’ 쏟아내는 아이디어 정곡을 찌르는 ‘시선’
전면을 도시지도로 감싸고 있다. 뒤편 스크린 영상으로 투사되는 도시는 빛으로 바닥선과 점을 이루며 도시 미니어처를 품고는 거대 도시를 영상케 한다. 무대는 간결하고, 장면의 공간으로 변주시키는 사각프레임 박스 판 넬 몇 개과 영상,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과 이미지로 장면을 교차적으로 전환한다. 전면으로 영상을 투사해 극중 인물들과 입체적인 대화와 등·퇴장을 시도하고 영상으로 무대의 표현의 경계를 허문다. 부패한 권력의 내각은 획일화한 탱고 춤을 추며 조롱으로 비틀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장면(욕조취조장면, 추격전, 계엄령 선포, 도시폭파, 선거와 투표) 등에서는 유신시대와 80년대 권력의 폭력과 민낯들을 연상시키는 만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연극은 눈 뜬 자들이 살아가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불빛을 달고 몽환적인 이미지, 입체적인 영상, 움직임과 놀이, 사각프레임 박스 판넬로 속도감 있는 장면전환을 이루며 우울하고 무거워 질 수 있는 권력과 정치 현상을 웃음으로 파고든다.
도시를 지켜내는 불빛은 민심의 시선이다. 마치 도시는 반민주적인 권력이 작동되어 가는 죽어가는 도시다. 그 틈으로 새어나오는 ‘빛’은 부패 권력의 작동을 감시하는 시민과 민중의 시선이다. 무대는 눈 뜬 자들이 살아가는 설계도면의 뼈대를 마주한다. 나레이션으로 4년 전 도시의 얘기를 하고 눈 먼 자들의 격리 수용얘기를 꺼낸다. 4년 뒤 이 도시에는 지방선거가 시행된다. 무대는 일순간에 비를 토해 내기 시작한다. 입체적으로 무대 전면으로 확대되는 빗물 사이로 배우들은 몽환적이고 그로데스크한 이미지와 분위기를 연출하고 영상과 무대로 이어지는 움직임과 이미지는 공간사면을 채우며 움직인다. 비가 그친 뒤 한 노파가 등장한다. 빗속을 뚫고 투표소로 나온 시민은 노파가 유일하다.
영상 속 선거인단은 지방선거 시민투표율이 저조할 것을 우려한다. TV 화면으로 전환되는 영상으로 앵커의 속보가 전달되고 추측성 일기예보가 호들갑스럽게 쏟아진다. 날씨는 오후 4시가 들어 잠잠해지고 시민들의 투표행렬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1차 투표는 시민들이 일제히 오후 4시에 투표소로 몰려 왔다는 것과 시민 70%가 백지투표를 던진 것이 문제가 된다. 언론과 TV는 시민들의 이상행동에 분석과 논평을 내고 연극 속 만화영상을 보는 것처럼 정치 평론가도 등장해 민주주의와 시민행동의 평가를 내린다. 총리가 등장해 내각회의를 열고,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를 한다. 백지투표는 국가에 대한 ‛도전행위’라는 것이 정부입장이다. 이어지는 재투표도 철저하게 국가권력이 개입되고 작동된다. 무대 바닥은 빛으로 점과 선을 연결하고 국가 감사체계의 시선으로 전환 되어 재투표가 진행된다.
무대는 익살스러운 TV시사만화풍경으로 전환되고 출구조사를 하는 방송과 언론은 출구통계 결과를 예측발표를 쏟아내는데, 개표결과 83%가 백지 투표를 던졌다. 국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무대는 취조실장면으로 바뀐다. 취조실 장면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연상케 하고 87년 박종철 사건의 역사를 지나 폭력적인 인권탄압의 현장으로 풍자된다. 목욕타올 장갑을 휘두르는 고문기술자의 비인권적인 폭력을 코믹스러운 장면으로 조롱하고 이동식 스탠드 불빛은 전기 스파크를 내며 마지막에 ‛탁’ 하고치고 ‛억’하고 쓰러지는 역사의 장면을 가슴으로 스며들게 한다. 이어지는 정부 내각회의에서는 부패된 권력의 공기로 숨을 쉬는 각료들과 권력의 집단성을 탱고 동작으로 획일화 시켜 정부권력을 비튼다.
국가위기 사태를 맞고 있는 도시공화국 내각들은 백지투표 침묵으로 저항하는 시민사회의 전류를 감지하지 못한다. 정부권력을 향한 장관들의 아첨과 획일화된 소동소리는 부패한 권력의 습함으로 묘사한다. 각료들도 좌·우 이념갈등으로 소동을 벌이고 대통령과 총리의 한 마디에 일제히 소리를 멈추고 권력을 향한 충성맹세가 이어지고 부패한 권력과 동일화된 피부를 부착시킨다. 정부는 국가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전복 시키고 있는 내부자와 시민들을 색출하기에 이른다. 백지투표를 던진 500명을 소환해 신문을 벌이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무대는 내각들과 총리, 시민들과 대통령이 무대와 영상으로 분할되어 심문과 추격전, 취조실 장면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내부자를 색출하기 위한 거짓말 탐지기도 진실의 침묵을 밝혀내지 못한다. 진실과 정의가 부재한 권력, 그 균열의 틈새로 시민은 소리를 멈추고 침묵의 투표로 저항한다.
부패한 권력과 깨어있는 시민사회
백지투표의 진실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비밀정부 요원들이 도시를 누비며 탐색전을 벌인다. 이동식 판넬은 추격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변신하고 투사되는 영상은 자동차바퀴를 형성해 장면과 무대를 입체적으로 따라간다. 정부는 백지투표를 국가 위험사태로 감지한다. 정부는 연극공연 금지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될 수 없다며 눈 뜬 자들이 살아가는 공화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무대는 대한민국 정치사(史)의 장면들로 채워지고 4·19, 유신, 5·18, 6월 민주항쟁과 6·29, 촛불의 시대를 넘어서고 있는 한국 사회를 교차시킨다. 무대는 영상과 배우들의 움직임과 이미지로 물대포, 군대, 탱크와 계엄군이 희화적으로 동원되고 정부는 시의회만 남겨두고 수도를 폐쇄해 버린다. 계엄을 선포한 이틀 뒤 도시는 죽음의 도시가 아니라 부패 권력의 환부가 도려나간 희망의 도시로 탈환된다.
환부를 온전한 피부로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질서이고 ‛정의’와 ‘진실’의 시선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다. 시민들은 침착하고 질서 있게 행동한다. 부패한 권력이 잘져 나간 도시는 자유와 희망, 예술이 넘쳐나는 도시다. 이동식 판넬은 미술관 갤러리에 온 것처럼 양면으로 도시를 활보하는 시민들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채워 넣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도시 불빛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에 경악한 계엄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TV뉴스는 권력의 심장으로 사태를 생중계를 하며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의 추악한 민낯의 풍경을 연출한다. 정권 변화 뒤에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는 언론과 권력의 중립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계엄령이 선포된 뒤 한 군인이 도시의 경계를 지키고 있는 검문소 장면에서는 군부정권을 연상시키게 하고 대통령은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군인을 상대로 복종과 충성 그리고 죽음을 은유적으로 강요한다.
무정부 도시로 변해 버린 평온한 도시는 정부의 자작극으로 테러가 발생한다. 정치적인 테러에 정부는 84%의 백지투표를 던진 백돌이들 테러라고 규정한다. 이어지는 시민들의 장례식 장면은 마치 세월호와 국가의문사의 죽음을 연상시키고 선거철만 되면 국민의 안보와 불안 심리를 자극해 북한도발을 선거로 악용했던 정치현장이 그려진다. 정부는 탈출한 시민들을 수도로 귀환하라고 종용하고 TV뉴스와 언론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고 정부와 내각은 가짜 뉴스를 생산하며 시민들을 폐쇄된 도시로 돌아올 것을 종용한다. 이 장면에서 정의와 진실은 침몰해 오작동 되고 있는 국가권력과 균열의 그림자들을 형성시키고 내각관료들이 대통령을 향해 흔들어대는 탱고 리듬의 볼륨을 높이며 조롱의 칼날을 세운다.
정부는 4년 전 실명사태 때 살인을 저지르고 살아남은 한 여자(의사부인)를 주목한다. 특공대가 출동하고 도시는 폭격기와 전투기가 날아들고 작전에 동원된 정부 특공대로 출동한 경정(이상희 분)은 정의와 진실을 달고 달려가는 허들선수 처럼 무대를 채운다. 경정은 특공대들과 의사와 부인을 심문하고 ‘진실’과 ‘정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특공대 장면, 신문과 취조장면, 여자의 결백, 구출작전까지 유신과 신군부 시대에 공안 통치로 권력을 독점해 학생, 시민, 민주투사, 정치인을 국가반란죄와 내란음모 올가미를 씌워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한 권력을 풍자시켜낸다. 정부와 특공대를 조정하는 권력은 암살자까지 동원하고 정부 특공대 경정은 의사부인을 마주 함으로써 정의와 진실의 눈이 뜨기 시작한다.
경정은 정부의 감시를 따돌리고 언론검열은 비켜가기 위해 보수언론을 통해 의사 부인 구출작전을 편다. 이 장면에서 80년대 신군부가 민주화 운동을 철저하게 감시한 언론통제와 보도 검열의 역사의 무게를 비튼다. 발행인은 권력의 지침으로 작동되고 있는 도시 보수언론의 기사제목까지 카피해 한 여인을 향한 정부의 조작극을 폭로한다. 무대 스크린으로 신문이 인쇄되고 배포되는 과정이 전면으로 확대되고 신문을 읽는 시민들의 이미지가 겹쳐지고 일순간 무대는 진실이 담긴 신문들로 쏟아진다. 경정은 보이지 않는 국가권력에 의해 암살되고 여전히 진실과 정의는 국가권력에 의해 은폐되어 4년 전 국가폭력에 저항한 의시부인도 부패한 권력의 총구로 죽게 된다.
<눈 뜬 자들의 도시>가 울리는 경고음
부패한 권력은 민중과 시민저항으로 거세된다. 민주주의가 혈전된 대한민국 길목 한복판을 지켜낸 것도 깨어있는 시민이었고, 학생과 민중의 저항의 소리였다. 백색투표를 던진 침묵의 소리를 권력을 향한 저항으로 판단하고 도시를 폐쇄하고 계엄령을 발동한 <눈 뜬 자들의 도시>는 민주주의를 탄압하던 대한민국 역사의 길 일수 있다. 거친 역사는 침묵도, 저항도 죽음으로 돌아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여전히 깨어있는 시민의 침묵을 외면하고 정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세계도시지도에 그려져 있는 모퉁이 일 수도 있다.
<눈 뜬 자들의 도시>의 마지막 장면에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저항의 소리처럼, 침묵을 외면한 경고음은 미세한 균열사이로 좌·우 이념을 넘어 그 함성이 도시의 광장으로 다시 채워질 수 있다. 역사가 그랬다. 부패한 권력은 분노와 저항의 시민혁명으로 민주화를 탈환 했고 그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은 현 문재인 정부까지 일곱번 권력이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게이트 사태로 분노한 시민은 강렬한 ‘촛불’의 침묵과 외침으로 저항했고, 대통령 탄핵 후 정부는 촛불로 권력을 탈환했다. 정권과 권력 그리고 정치는 사계절과 같다.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박정의 연출 <눈 뜬 자들의 도시>는 살아있는 한국 사회의 불빛으로 반사시켰다. 특히 특공대 출동부터 극중 인물 경정으로 분해 무대를 허들선수 처럼 끌고 나가는 이상희 배우의 움직임과 연기는 극 후반을 채웠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