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잘살기? No!… 지역 사회와 ‘함께 살기’

입력 2018-11-20 21:45
일주일에 한 번 주일날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삶터에서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며 살 순 없을까. 만약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상상이 201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현실이 됐다. 나들목교회(대표목사 김형국)와 정림건축문화재단, 한빛누리재단이 힘을 합쳐 추진한 도시 속 공동주거 프로젝트 ‘용두동집’을 통해서다.

교회 공동체가 꿈꿔온 함께 살기, 현실이 되다

막 입주한 여섯 가족이 사는 서울 동대문구 안암로 용두동집을 지난 31일 찾았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다세대주택. 한 눈에 보기에도 돋보이는 건물 외관이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울 동대문구 안암로 용두동집을 밖에서 바라본 모습. 가운데 건물이 용두동집이다. 송지수 인턴기자

현재 초등학생 미만의 어린아이 7명에 어른 12명, 모두 19명이 살고 있다. 301호엔 70대 은퇴 목회자 부부, 302호엔 40대 네 자녀 다둥이 가족이 둥지를 틀었다. 401호는 선교단체 간사와 공익재단에 근무하는 40대 부부, 402호엔 나들목교회에서 ‘함께 살기’ 사역을 담당한 김선규 간사 내외가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501호엔 50대 연출가 김수형씨와 작가인 아내, 502호에는 건축가와 디자이너 부부가 이사 왔다. 이날 인터뷰에는 김수형씨와 김선규씨, 이 집을 설계하고 건축한 정림건축문화재단 박성태 이사,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가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서울 평창동, 경기도 하남 등 제각각 다른 동네에서 살았다. 제각각 함께 살기를 꿈꿔오긴 했지만 막상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김선규씨는 “10년 전부터 마음 맞는 사람들과 땅을 보러 다니면서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마지막 실행단계에서 중단되곤 했다”고 말했다. 번번이 실행 직전 무산되면서 함께 살기를 포기했을 무렵, 교회에서 용두동집을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 외에도 개인들이 함께 살기를 추진하다 무산되는 것을 보다 교회가 나서게 됐다. 교회는 정림건축문화재단과 협의해 이 곳에 집을 짓고, 2층 사무실 공감을 임대하기로 했다. 공용공간에 대한 관리 비용도 교회가 부담한다. 입주자들은 주변 아파트보다 조금 싼 시세로 3년 전세 계약을 하고 입주했다. 김씨는 6가족 중 가장 늦게 이 집에 합류했다.

‘우리만의 집’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쓰는 공간’으로

집의 설계와 건축은 정림건축문화재단 박성태 이사가 맡았다. 박 이사는 ‘통의동집’, ‘팔판동집’ 등 과거 공동주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자고 땅을 사서 집을 짓지만, 공용면적 한두 평 문제로 갈등하다 틀어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입주 예정자의 의견을 반영하되, 그간의 노하우를 토대로 설계했다. 1년간 설계 및 시공을 했고, 입주자들은 각각 1년의 입주 준비 기간을 가졌다. 개별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동시에 최대한 많은 공간을 이웃과 나누는 데 중점을 뒀다.
서울 용두동집 2층 공용식당에서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입주자들. 김선규씨 제공

대표적인 공간이 66㎡(20평) 규모의 2층 공용식당이다. 이곳에선 수시로 파티가 열린다. 입주자들이 모여 있는 카톡방에 누군가 “볶음밥 많이 했는데 함께 먹을래”하면 순식간에 한 집에선 김치와 샐러드, 다른 집에선 국을 끓여 내려와 푸짐한 한 상이 완성된다. 입주자뿐 아니라 외부에도 공간을 오픈한다. 키르기스스탄 등 외국인 유학생들이 인터뷰 전날에도 이곳에서 모임을 했다.

지하 1층엔 132㎡(40평) 남짓한 동네극장이 들어섰다. 90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지난 4일까지 개관기념 낭독극 ‘바람에 지워진 얼굴’을 공연했다. 입주자이자 이번 공연을 연출한 김수형씨는 “앞으로 지역주민들이나 작은 공간 하는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공간을 빌려줄지 협의할 것”이라며 “동네극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 달에 한 번 공연이 열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1층 개방 공간에 이웃서점 등을 만들어 지역사회 주민들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함께 살기의 즐거움…새로운 가족이 생겼어요

용두동집의 각 가정엔 특이하게 세탁기가 없다. 빨래는 3층 공용세탁실을 함께 쓰면서 해결한다. 세탁기가 들어갈 다용도실을 없애고 욕실도 최대한 작게 만들었다. 대신 집마다 거실을 넉넉히 쓸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했다. 이날 둘러본 402호와 501호의 경우 가장 눈에 띈 점은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커다란 탁자였다. 은퇴 목회자 외에 5가정의 부부는 모두 10년 이상 나들목교회에서 가정교회를 섬겨온 목자 출신이다. 이미 자기 집을 열어서 가정교회 성도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먹고 교제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란 얘기다.

한 달이 지났지만 입주자들 사이에 별다른 갈등이 없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선규씨는 “공동체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각자 요구할 건 요구하고 양보할 건 양보한다”며 “배려가 이미 몸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환대받는다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했다. 김형국 목사도 “공동체 훈련 없이 하드웨어만 갖춘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10년 이상 충분히 가정교회를 통해 공동체적인 삶을 배운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두동집에는 두 가정 7명의 어린이들이 있다. 김선규씨 집에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들의 모습. 아이들에겐 용두동집 그 자체가 놀이터나 다름 없다. 김선규씨 제공.
입주자 규칙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공동식당을 사용한 뒤 물기 없이 깨끗하게 원상복구 해놓는다’는 식의 작지만 실질적인 규칙들이다. 아이를 키우는 집과 아이가 없는 집 사이의 기준이 다른 부분도 서로 이해하며 기준을 맞춰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함께 사니 과연 무엇이 좋을까. 김수형씨는 “평창동 조용한 곳에 살다가 북적거리는 이 집으로 이사 왔는데 오히려 숙면을 취한다”며 “어느새 다른 입주자들에게 가족처럼 기대고 쉼을 얻는 자신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 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갈 때 도시 안에서 정서적인 대오가 형성된다”며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창조세계, 성경, 교회 공동체를 통해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지만 무엇보다 가족 공동체를 통해 격려해주시고 위로도 해 주신다. 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손길, 마음을 느낄 수 있어 거기에서 얻는 위로가 크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께 살기를 통해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만났고, 이들에게 기대고 쉼을 얻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게 된다는 얘기다. 그의 아내 최성문 작가는 “카톡방에 누군가 혹시 감기약이 있냐고 물으면 너도나도 답을 올린다”며 “이곳에서는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7명의 아이들은 이웃집을 마치 자기 집 드나들 듯 다닌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은 마치 탐험이라도 하듯 이 집, 저 집 다니며 구경하고 함께 어울린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큰 집으로 이사 온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최성문 작가는 “2층부터 5층까지 모든 공간이 내 집이 된 기분”이라며 “공동공간도 내 공간이라는 마음으로 살펴보게 된다”고 했다. 김선규씨는 “며칠 전 아래층 아이가 비밀번호를 까먹어 집에 못 들어가서 울고 있었는데, 마침 2층 할머니가 이를 보시고 집에 데리고 가서 돌보다 저녁밥까지 챙겨주셨다”고 전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든든한 우군이 생긴 셈이다. 두 내외가 찾아오는 사람 없이 살던 70대 부부 역시 챙겨줄 사람들이 생기면서 삶이 더욱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함께 살기의 의미…크리스천 공동체,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다

용두동집은 나들목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대광고등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여섯 가정에서 수시로 가정교회 모임이 열리다 보니 교인들도 이 집을 드나들며 기독교인들의 함께 살기가 어떠한지를 지켜볼 수 있다. 입주한 뒤 하루도 빠짐없이 외부인들의 방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김형국 목사는 “그동안 삶터, 주거공간에서 어떻게 기독교를 드러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거의 논의된 적이 없다”며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사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웃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용두동집 공용식당에서 용두동집 관계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선규 나들목교회 함께살기 간사, 정림건축문화재단 박성태 이사, 김형국 나들목교회 대표목사와 김수형 연출가. 송지수 인턴기자

무엇보다 크리스천의 함께 살기가 우리끼리 잘살기에 그치지 않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모종의 역할을 꿈꾸고 있다. 박성태 이사는 “그동안 함께 살기를 꿈꿔왔지만 구조적 취약함이나 우리가 갖고 있는 완고한 자기 욕심이 있어 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나들목교회를 통해 크리스천이 모여 살면서 삭막한 도시에서 자기 공간과 자기의 삶만 보살피는 게 아니라 보살핌을 확대하면서 공통분모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각자 자기 삶은 있지만 모였을 때 교집합이 생기고, 그것을 통해 풍성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며 “지금은 나들목 사람들이 모인 크리스천 공동체이지만 꼭 크리스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품을 수 있는 작은 여지를 만들어가면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제자훈련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함께 살기를 통해 지역사회를 품고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