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의 한 우체통에서 지난 9일 겉면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색 봉투가 발견됐습니다. 봉투 안에는 5만원권 지폐 20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이를 본 집배원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이 우체통에서 현금 봉투가 발견된 일이 벌써 8번째였기 때문이죠.
일명 ‘우체통 기부천사’. 그가 누군지 모릅니다. 합천에 출몰하니 이곳에 거주하지 않을까 하고 추정될 뿐입니다. 익명의 기부천사는 매년 2~3회 한 우체통에 현금 봉투를 넣고 있습니다. 봉투에는 40만~100만원의 현금과 메모가 들어있었습니다. 메모에는 항상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당부가 적혀 있습니다. 그의 성별이나 나이 등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메모에 적힌 필체와 동일한 우체통을 이용한 점 등으로 미뤄 한 동일 인물의 기부로 보고 있습니다.
그의 선행이 시작된 것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9월, 처음으로 현금 30만원이 담긴 봉투가 우체통에서 발견됐습니다. 봉투 겉면에는 ‘학생 지원’이라는 짤막한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얼마 안 되지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라고 적힌 메모지가 들어있었습니다. 기부금은 기탁자의 뜻에 따라 합천지역에서 운영 중인 학습관에 전달돼 학생들을 위해 사용됐습니다.
그의 선행은 4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5년 9월 30만원을 시작으로 11월에는 40만원을 남겼습니다. 그 후 2016년 2차례, 지난해 무려 3차례나 기부를 했죠. 그렇게 총 8차례 기부한 금액은 430만5000원에 이릅니다. 우체통 기부천사가 남긴 메모에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주위의 어려운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금액이 적습니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구정입니다. 떡국 한 그릇 맛나게 이웃들과 했으면 좋겠네요. 너무 적은 금액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소년·소녀 가장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라도 줄 수 있을지… 너무 적은 금액입니다.”
“너무 더운 날씨입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어려운 분들과….”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려운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우체통 기부천사는 매번 메모지에 “큰 금액이 아니다”고 겸손하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임이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그의 얼굴도, 직업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40만원, 50만원의 현금을 담은 봉투는 누군가가 열심히 벌어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을 상상하게 합니다.
1만원 한 장이라도 남을 위해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체통 기부천사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신을 숨긴 채 기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체통 기부천사의 지속적 선행과 그 따뜻한 마음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더불어 매번 현금 봉투를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전달해준 합천우체국과 합천군청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강문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