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사모펀드로 평가받는 KCGI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2대 주주가 됐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10%룰 폐지를 앞두고 사모펀드들이 한진칼을 시작으로 기업의 경영권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형 엘리엇’ 등장하나
KCGI는 지난 15일 투자목적회사인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의 지분 9%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KCGI는 한진칼 최대주주인 조양호 회장(17.8%)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금융권에선 KCGI가 한국형 엘리엇의 첫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근거는 지난 9월 금융당국에서 발표한 ‘사모펀드 제도 개편안’에 포함된 ‘10%룰’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인 PEF는 다른 회사의 지분을 최초 취득한 날부터 6개월 안에 발행주식의 총 10% 이상 투자해야만 한다. 가령 경영참여형 PEF가 시가총액 301조원인 삼성전자에 투자하려면 30조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지분 1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개편안엔 PEF 지분 보유에 관한 규제인 ‘10%룰'을 전면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외 헤지펀드처럼 경영참여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한국형 엘리엇’이라고 불렸다.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 1.4%를 매입해 현대차그룹 측에 지배구조 개편안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KCGI 지분 취득에 대한 보고서에서 “한진칼의 이사진 교체를 통한 경영권 장악 시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현재 조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한진칼 지분은 28.9%다. KCGI가 조 회장 지분을 제외한 다른 주주와 손을 잡을 경우 지분 격차는 줄어들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8.3%, 크레디트 스위스 5%, 한국투자신탁운용 3.8%다. 소액주주도 58.38%나 된다.
한진칼의 이사진 7명 중 3명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고 새 이사는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한다. 조 회장 일가와 KCGI 간의 표 대결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양 연구원은 “주총에서 표 대결로 (KCGI가)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을지는 우호 지분 확보 여부에 달렸다”면서 “한진그룹이 국민적 공분을 샀던 만큼 소액주주들이 그레이스홀딩스에 표를 위임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떨고 있는 상장사들… 전문가, ‘10%룰’은 우군
상장사들은 KCGI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사모펀드 제도 개편안이 경영권 방어수단은 만들지 않고 공격 수단만 풀어놓은 제도라며 반발했다.
이재혁 상장사협의회 정책홍보팀장은 “경영권은 공격과 방어가 공평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격수단은 풀어져 있고 방어수단은 자기 주식뿐”이라고 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주식’ ‘포이즌 필’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대주주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M&A가 발생하면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는 장치다.
반대 의견도 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사모펀드는 특성상 펀드 수익률을 제고하는 만큼 기업가치가 오를수록 좋다”며 “기업으로서는 경영권 간섭보다 우군이라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실제 한진칼 주가는 KCGI가 지분을 취득하고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뒤 이날 오전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날 오전 9시 14분 현재 전거래일 대비 4.75% 상승한 2만9650원에 거래됐다. 그러나 KCGI가 이날 오후 “경영권 장악 의도가 없다”는 입장문을 밝힌 뒤 한진칼 주가는 하락 반전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