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지붕 아래 두 개의 분리된 입구를 지닌 결핵 환자용 격리병동.
유진벨재단(스티븐 린튼 회장)은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컨테이너처럼 보이는 격리병동 20개를 제작했지만 대북 제재로 북한에 보낼 수 없었다. 병동 바닥에 설치된 스테인리스 보일러 관 등이 반입 금지 품목이었던 탓이다.
지난달 16일부터 지난 6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던 재단은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결핵 치료 지원 현황과 어려움을 얘기했다. 스티븐 린튼 회장은 “대북 제재 등의 영향으로 우리와 함께 북한 결핵 환자를 돕던 ‘글로벌 펀드’가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며 “그 공백으로 인한 결핵약 공급 차질을 막기 위해 정부와 국제기구, 민간단체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결핵 진단을 받으면 약에 대한 내성 검사를 하지 않고 일반결핵약으로 치료한다. 정확한 원인을 치료하지 않은 채 약에 대한 내성만 키우게 되면 일반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다제내성결핵으로 악화된다. 북한에는 최대 8000명의 다제내성결핵 환자가 있다. 올해 재단은 1200명, 글로벌 펀드는 1000명 환자에게 약을 지원했다. 전체 환자의 27.5%만이 치료를 받은 셈이다.
린튼 회장은 “일반결핵약은 2020년까지, 다제내성결핵약은 이번 가을 등록한 환자분까지만 남아있다”며 “글로벌 펀드의 공백을 메꾸는 데만 200만~3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에 약을 보내기 위해선 중국을 거쳐야 하며 해상운송과 통관 검역 절차로 9개월이 걸린다. 때문에 내년 상반기까지 약을 주문해야만 결핵약 부족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린튼 회장은 말했다.
재단은 개성공단에 국가결핵표준실험실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의 검사실 지원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서다. 린튼 회장은 “개성은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기 때문에 결핵진단장비 사용에 어려움이 없다”며 “장비 사용법을 전수하며 남북한 결핵 전문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도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린튼 회장은 “결핵은 사람을 3~5년에 걸쳐 죽이기에 시급하다는 인식이 부족하다”며 “결핵 퇴치를 위해 검사 장비를 지원하는 남북 협력 사업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인도주의적 협력이기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단은 ‘전남지역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벨 선교사의 한국 선교 100주년을 맞아 그의 혈족인 린튼 박사가 세웠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