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뉴스] “국어영역 도중 라디오 나왔는데 고작 ‘1분’ 더 준 학교”

입력 2018-11-18 07:40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201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맞는 첫 주말입니다. 1년여간의 고된 싸움에서 해방된 수험생들이 기쁨을 만끽해야 할 시기인데, 최근 3일 동안 수능 관련 사이트는 ‘라디오 사고’ 때문에 떠들썩했습니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A 고등학교에서 지난 15일 1교시 국어영역 도중 벌어진 일입니다.

대학입시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수능날 만점시험지를 휘날리자(수만휘)’에는 A 고교에서 국어영역 시험을 치르던 중 방송사고를 겪었다는 글이 수능 당일 저녁 다수 올라왔습니다. 마지막 시험인 5교시 ‘제2외국어/한문’ 시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글을 종합하면 A 고교 시험장에 처음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 것은 국어 시험이 한창이던 오전 9시30분쯤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수험생들은 라디오 진행자들의 대화, 광고 등이 생생히 들렸다고 했습니다.

한 수험생은 페이스북에 당시 심정을 자세히 전하기도 했습니다. 수험생 B씨는 “비문학 지문을 집중해서 읽던 중에 생전 처음 겪는 상황 때문에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면서 지문을 읽고, 또 읽었지만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이고 난리를 쳐도 하나도 안 읽혔다”고 말했습니다.


B씨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학교 측의 적절한 조처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험이 끝날 때쯤에서야 “라디오가 1분 동안 송출됐으니 추가 시간을 1분 더 주겠다”는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B씨는 “추가 시간을 바로 준 것도 아니고 시험이 다 끝나가는 순간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가장 어려웠다는 국어 시험에서 이미 집중력이 다 흩어졌는데 고작 1분이라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나는 그 1분간의 방송 이후 30분이 통째로 무너졌다”고도 했지요.

그런데 방송사고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제2외국어 영역 때 현장에 있던 교사들의 대화가 방송으로 송출됐다고 합니다. 학교 측은 “3분간 방송됐으니 3분을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B씨는 “국어에 비해 타격은 없었지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더라”며 “오전에 실수가 났으면 더 주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 수능이 애들 장난이냐”고 반문했습니다.

B씨는 “나는 재수생으로서 지난 1년간 시끄러운 환경에 대비해 문제 푸는 연습을 수백 번은 했지만 라디오는 상상도 못 했다”면서 “도대체 어느 누가 그 상황에서 평정심을 찾고 차분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수험생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화가 난다. 이게 정말 단순히 시험장 배정 운이라고 치부할 문제인가”라고 했고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B씨 외에도 몇몇 학생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모두 방송 사고와 동일한 시간을 주는 것은 올바른 대처가 아니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예상 못 한 상황에 당황한 수험생들이 평정심을 잃은 채 나머지 시험을 치렀을 텐데, 고작 1분으로는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일부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올 만큼 허술했던 시험장 관리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가르는 수능. 수험생들은 진학하고 싶은 대학을 머릿속에 그리며 지난 1년을 버텼겠지요. 수능 당일의 간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사실 어떤 보상을 해준다고 한들 이미 상해버린 속을 달랠 수 있을까요.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이들의 합격에 대한 열망은 그 무엇보다 뜨거웠을 텐데. 최선을 다할 기회마저 빼앗겨 버린 이들의 사연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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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