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 정치적 외압에도 불구하고 소신있는 판결을 내렸던 고(故) 이영구 판사 1주기를 맞아 16일 추모전을 열었다. 박근혜정부와 ‘양승태 대법원’ 간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져 사법부가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초유의 사태 속에 열린 이날 행사는 더욱 의미가 깊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전시관에서 열린 추모전 개막식에서 추모사를 통해 ‘재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한 고인의 발언을 소개했다.
‘재판독립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미사여구와 그럴싸한 논리를 판결문에서 전개하더라도 국민은 재판을 신뢰하지 않으며 사법권 독립을 지켜야할 사명과 임무는 사법행정의 책임자에게 있다’는 발언이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 사법부는 최근 드러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큰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면서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대법원장으로 고인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고인이 꿈꿨던 ‘정의롭고 독립된 법원’을 만들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어 “이 판사께선 권력에 굴복않고 오로지 법의 근본이 되는 국민 뜻을 살피고 진지한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평소 소신을 판결로 나타냈다”면서 “법관에게 가장 기본이지만 온전히 이를 이행해 나가긴 결코 쉽지 않다"며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서울민형사지법 영등포지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1976년 서울대에서 독재반대 시위를 한 서울대생 2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석방했고 이후 정보기관과 검찰의 거센 압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11월 박정희 대통령 장기집권을 비판해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 서문여고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 중 유일한 무죄판결이었다. 이후 이 판사는 1977년 1월 전주지법으로 좌천됐고 인사권자의 듯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한달을 기다렸다 사직했다. 이후 40년 가량 변호사로 활동했다. 정부는 지난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그의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 판사께서 법관으로 봉직한 기간은 1962년부터 1977년까지 15년으로 이후 40년 남짓 변호사로 활동한 것에 비하면 길다고 하긴 어렵지만, 고인이 사법부와 후배 법관에게 남긴 귀한 가르침은 시간의 길고 짧음과 무관하다”며 다시금 고인의 뜻을 기렸다.
이날 개막식엔 이 판사 유족 및 친지, 최광률·김문희 전 헌법재판관 및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 등 고인과 인연이 있는 원로법조인 등이 참석했다.
12월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선 고인의 법복과 주요 판결문, 사용했던 물품 등을 볼 수 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