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을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이 길거리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학생은 “처음 보는 흑인·백인 무리에게 무차별적으로 맞았다”며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말했다.
A씨는 16일 국민일보에 당시 겪은 상황을 자세히 전해왔다. 그가 폭행을 당한 것은 지난 11일 오후 5시쯤 런던 시내에서다. A씨는 친구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가 A씨 머리에 쓰레기를 던졌고, 뒤돌아보자 10명 정도 되는 흑인·백인 청소년 무리가 서 있었다.
A씨는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무리는 계속해서 쓰레기를 던졌다. A씨가 “그만하라”고 말했더니 무리 중 한 흑인 여자 청소년은 “영어 할 줄 알잖아?”라며 다시 머리에 쓰레기를 던졌다.
분노한 A씨도 같은 방식으로 응대했고, 그 순간 폭행이 시작됐다. 청소년 일행은 바닥에 쓰러진 A씨 온몸을 구타했다. 특히 말을 걸었던 흑인 청소년은 A씨 뺨을 수차례 때렸다. A씨가 “지금은 21세기다. 인종차별을 멈춰라”고 외쳐도 폭행은 계속됐다고 한다.
A씨는 “처음 머리에 쓰레기를 맞았을 때는 실수로 잘못 던진 줄 알았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나를 보며 웃고 있더라. 많이 화가 났지만 대응해봤자 손해인 것 같아 무시하려 했다”며 “이게 인종차별의 악순환인 것 같다”고 말했다.
폭행 당시 심경에 대해서는 “너무 무섭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됐다”면서 “아무도 말려주지 않은 채 폭행이 계속되자 절망스러웠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싶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행인 2명이 청소년 일행을 막아서며 A씨를 도왔다. 무리는 떠나는 듯하더니 다시 돌아와 A씨를 때렸다. A씨는 “180cm가 넘는 백인 남자가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때렸을 때 너무 세게 맞아서 정신이 혼미해졌다”며 “런던의 가장 번화가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행인 2명뿐이었다. 모두 휴대전화로 찍고만 있었다”고 했다.
A씨를 도운 행인 중 1명은 영국 국적의 혼혈이었다고 한다. 그 행인이 “나도 백인과 다른 외모 때문에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다. 건너편에서 보고 있다가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뛰어왔다”고 말했다고 A씨는 전했다. 행인은 “이건 인종차별적 집단 구타”라고 말했다고 한다.
A씨는 이 행인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지만 1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전화를 계속해도 “언제 출발했는지 알아보고 있다. 전화를 다시 주겠다”는 답변뿐이었다. A씨는 결국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통해 사건을 접수했다. 돌아온 답변은 ‘심리치료를 신청하라’였다.
A씨는 폭행으로 인해 뒤통수에 큰 혹이 나고 턱이 부었다고 한다. 무릎에도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A씨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폭행 다음 날 저녁 갑자기 호흡곤란과 구토 증상이 나타났다”며 “급히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더니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쇼크라고 했다”고 말했다.
주영 한국대사관은 15일 페이스북에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 노상에서 집단 폭행 피해를 당한 우리 국민 피해자 분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현재 영국 경찰을 상대로 신속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요청한 상태”라고 적었다. 영국 경찰 측은 피해자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혐오범죄의 대상이 된 것인지를 면밀히 검토 후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페이스북에도 피해 정황이 담긴 글을 올렸다. 그는 “여러 한국인 유학생이 제 글을 보고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면서 “영국인 누구도 인종차별적 폭력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나를 폭행한 10대들도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