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악수로 짧게 인사만 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난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이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순방에 동행한 노가미 고타로 관방성 부장관이 기자들에게 “한·일 양국 정상은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잠깐 인사 정도로 악수를 하고 이후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는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같은 날 아사히신문은 일본 외무성 관계자가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미 (한국에) 통보한 상태여서 정상끼리 다시 논의할 필요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한국 측도 아베 총리가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사법 판단에 정치가 대응하라는 것이냐’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도 인용했다.
이어 한·일 정상이 “서로 불신감이 뿌리 깊어 격렬한 논쟁이 되는 기회를 피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양자 협의 및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에 대한 준비를 마쳤으며 해외 일본 대사관을 통한 여론전도 본격화해 한·일 간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3~1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비판하기 위해 ‘이전에 한국에서 온 민간 작업자들에 대한 사실은 무엇인가? (What are the Facts regarding Former Civilian Workers from the Korean Peninsula?)’라는 제목의 영문판 자료를 만들었으며 이를 참가국들에 배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주장을 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재했고, 일본 대사관은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주장한 고노 외무상의 담화를 일본어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주요 국가 언어로 번역해 올린 바 있다.
이신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