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74. 시 음악극으로 들려주는 ‘이장희 시인의 노래’

입력 2018-11-15 08:38

시음악극으로 들리는 극단 구리거울의 ‘이장희 시인의 노래’


극단 <구리거울>에 의해 대구에서 출생한 이장희(1900~1929) 시인의 삶과 시대의 고뇌를 시음악극으로 그려내고 있는 <푸르고 푸른>이 대구 봉산문화회관 가온홀(11월1~4)에 올려졌다. 대구는 그동안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저항시인 이상화의 일대기를 연극과 뮤지컬로 다양하게 조명해 왔고, 대구 중구에 고택을 개방하면서 근대문화의 거리로 알려져 명소가 됐다. 대구에서 출생해 한국문학을 대표하고 있는 문학인과 미술·음악·연극분야의 인물과 삶이 다양한 예술 창작 작품으로 개발되고 있는 것은 대구문화재단이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적극 발굴하면서 부터다. 대구문화재단은 ‘지역특성화 문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술단체들이 근·현대 예술인들의 일대기를 발굴해 연극과 뮤지컬, 거리 극으로 생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2018공연문화도시조성사업 일환(대명아트로조성사업) 수행단체인 극단CT는 근·현대 문화예술인 12명을 묶어 <대구 근·현대문화예술인물 12인을 그리다>( 홍해성, 이장희, 현진건, 이상화, 박태준, 서병오, 이인성 등) 라는 주제로 거리공연을 통해 석고마임, 음악, 시 낭송과 음악 등 콜라보 퍼포먼스 등을 융합하고 역사인물을 거리로 소환해 문화토양을 만들고 있다. 극단 처용은 시인 이상화와 같은 날 사망한 소설가 현진건(1900~1943)의 대표작 ‘운수좋은 날’을 극장공간을 벗어나 거리공연으로 소개했다. 이러한 대구문화 토양에서 이상화 시인과 동시대를 함께 한 불운한 천재시인 이장희 시인의 삶과 시대의 고뇌를 시음악극(뮤지컬)로 그려낸 것은 의미가 있다.

2014년도에 창단한 극단 구리거울은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출발로 <늙은 자전거>, <파수꾼>, <메멘토 모리> 와 뮤지컬 <달빛에 잠들다>, <봄봄>, 가곡 오페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등 연극·뮤지컬·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공연하고 있다. 김미정 연출은 이외에도 <리어왕>, <우리읍내>, <유리동물원>, <햄릿 -존재의 방식> 등을 연출했으며 셰익스피어와 영미현대연극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푸르고 푸른> 극의 구성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것은 1951년도에 백웅(白熊 )백기만이 펴낸 시집, <상화와 고월>(尙火와 古月)이라는 책 한권이다.

백기만(1902∼1967)은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양주동과 세 사람(이장희, 이상화, 양주동)은 금성(金星)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함께 했다. 백기만은 짧은 생애를 강렬하게 살아간 두 친구 우정과 시인을 회상하는 친구의 글과 시편들을 묶은 책이다. 연출이 고서점에서 발견해 보관하고 있다. 상화와 고월의 전기와 문학을 포함하고 있는 시집은 이상화 시를 모은 <새벽의 빛>과 이장희 시를 모은<금붕어>, 양주동(梁柱東)의 <낙월애상>(落月哀想)과 오상순(吳相淳)의 <고월과 고양이>등이 수록되어 있다. <금붕어> 실린 이장희 시는 11편이다. 이상화의 시편은 16편 들어있다. 뮤지컬 <푸르고 푸른>는 이중에 이장희 시인의 대표적 시 <봄은 고양이로다>, <청천의 유방>, <하일소경> 과 이상화 시를 묶었다. 이들의 우정과 고뇌를 시음악극으로 들려주는 시는 시인의 시와 창작한 시들이 연결되어 17편을 뮤지컬 넘버로 연결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삶과 우정, 그리고 시대의 고뇌를 그려내고 있다.

푸르고 푸른 시인, 이장희의 삶


식민지 시대 대구의 부호이자 친일파 이병학 3남으로 태어난 이장희 시인은 스물아홉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자살로 마감한 인생은 강렬했다. 쥐약을 입에 털어 넣기 전까지 며칠 동안 방에서 금붕어 그림만 그렸다. 그는 생애 고양이와 금붕어에 집착했다. 시인 생애에 시 36편과 톨스토이단편 <장구한 귀향>을 번역 소설로 남기고 세상과 작별을 했다. 시인의 시중에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것은 <봄은 고양이로다>, <고양이의 꿈> 두 편이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시인의 내면은 나라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처럼 언어로 말을 걸지는 못했다. 이유는 가족사(史)의 결핍과 불안 때문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삼켜낼 수밖에 없는 분노와 저항은 친일파 아버지를 향했다.

친구 이상화가 나라 잃은 시대의 고뇌를 시의 저항으로 써내려 갈 때, 이장희는 부친 이병학을 단절할 수 없는 슬픔과 시대의 고뇌는 친일파 아들이라는 죄의식으로 살아야 했다. 이장희의 친모는 그가 5살 때 사망하고 뒤로는 2명의 계모 밑에서 자랐고 친모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알려진 이병학 자녀는 12남9녀다. 부친은 일본과 손을 잡고 막대한 부를 이루며 가업을 시인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러나 이장희는 사업과 일본어 통역의 손길을 거부하며 아버지를 향한 저항의식을 키웠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며 시대를 향해 저항할 수 없는 운명과 삶의 고뇌는 박제된 금붕어로 압축된다. 집 벽면과 나무 바닥에 그려진 금붕어는 죽었지만 시인의 내면과 영혼으로 움직이는 금붕어다. 아기미로 숨을 쉬며 자유롭게 헤엄치며 살아갈 수 없는 자아의 투영이며, 살아도 죽은 것 같은 가족사(史)와 식민지 시대 민족의 풍경이다.

민족의 저항을 불 갈이 써내려간 이상화와는 다르게 친일 아버지를 벗어날 수 없었던 아들과 시인으로서의 고뇌는 아름다운 시어로 파고든다. 민족의 아픔과 비극을 ‘봄은 고양이 로다’의 시어처럼 에둘러 노래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香氣(향기)가 어리우도다. (중략)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생기)가 뛰놀아라” 시대의 봄을 맞을 수 없는 것은 날카롭게 쭉 뻗는 고양이의 수염이다. 날카로운 수염은 푸른 봄의 생기를 만지며 억압과 식민폭력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자유로운 해방을 갈망하는 노래다. 민족독립을 향한 날카로운 저항적 시어는 없지만 시인 눈으로 투영되는 시대는 민족의 향기가 봄처럼 다가서는 ‘푸르고 푸른’ 세상이며, 아버지와 친일파들을 잃어버린 땅으로 되돌려야 하는 동심 같은 시선이며, 인간의 푸른 내면의 갈망이다.

이런 면에서 시인 이장희의 저항의식은 실천적 행동이 아니라 민족의 푸른 강산을 삼켜 버린 인간과 친일파들의 내면을 치유하고 싶은 푸른 동심의 세계에 닿아있다. 아버지와 분열된 가족사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인의 내면은 전진 할 수 없는 우울한 고뇌이며,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박제된 금붕어다. 시 음악극(Poetic musical)이라 할 수 있는 <푸르고 푸른>은 상화와 고월의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어를 제목으로 차용하고, 암울한 시대에 살아가는 민족애와 고뇌하고 방황하는 청년시인들의 우정을 내면의 깊은 감성을 들추며 아픔을 그려낸다.

박제된 <금붕어>와 시인의 노래

이장희와 이상화 시로 들려주는 <푸르고 푸른> 무대는 시대의 우울과 짧은 생애의 비극적 운명을 산 이장희 시인의 불운한 절망적 고뇌와 우정을 그려내고 있다. 김미정 연출은 창작 동기를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의 시인이 식민지 조국의 현실과 독립 염원을 담은 시를 단 한편도 쓰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과 “이상화 시인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천재시인 시세계를 알리고 싶어 시음악극으로 창작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무대의 배경은 1920년대 시인들이 활동했던 대구, 일본, 서울이 무대가 된다. 이상화, 양주동, 이장희 시인과의 돈독한 우정을 그려내고 시대를 고민하는 청년 시인의 감미로운 내면도 담아낸다. 이장희 시인은 교토중학을 다닐 때 동경미술대학 다니는 한 일본여인을 교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이장희와 양주동 사이의 편지로 들어난다. 이장희가 사랑한다고 밝히고 있는 M이라는 여성을 <푸르고 푸른>에서는 음악다방(자연장)을 운영하던 에이코라는 여인을 동일 인물로 가정해 극과 장면을 풍성하게 연결한다.

어머니의 사망으로 모성애의 결핍을 보인 시인은 에이코를 통해 시적영감을 받는다. 자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 시인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푸르고 푸른>은 세 사람의 우정, 시대를 밟고 고뇌하는 시인의 삶과 내면으로 부터 거세하지 못한 아버지 김병학과의 갈등, 사랑한 여인 에이꼬(김은영 분)과 어머니의 자장가의 소리와 이미지를 교차 투영 시키고 마지막 장면은 자유에서 박제되어가는 금붕어를 그리는 장면까지 연결한다. 시의 세계와 이들의 삶을 극으로 담으며 시인의 운율을 따라 가면서도 편곡된 시의 멜로디는 시인의 삶과 고뇌를 응축시키고 시를 무대에서 들을 수 있도록 올려놓는다.

연출은 드라마적인 극을 삽입하기 위해 뮤지컬 넘버(하일소경, 연) 등은 원시(原詩)의 변주를 통해 노랫말을 붙이고 시의 운율을 음악적 멜로디로 다듬었다. 창작된 시와 상화의 시 세편 (시인에게, 통곡, 독백)을 뮤지컬 넘버로 창작(편곡과 작곡․ 편준원)해 시인의 삶을 라이브 파아노 반주 선율로 쫒고, 바라본다. 장면전환도 영상으로 묶어 효율적으로 했다. 영상으로 투사되는 장면은 집이 되고 마당이 된다. 나무 무대는 걷어내고, 시인의 삶과 이들이 만나는 배경과 시대를 수채화 같은 영상으로 투사하고 그려내면서 영상의 배경으로 장면을 설명한다. 장면변화도 두 장의 백드롭을 무대에 겹쳐 달고 장면변화를 영상으로 분할해 시의 노래 소리가 더 들릴 수 있도록 장치를 최소화 하면서 이장희(조명현 분), 이상화(손현진 분), 백기만(이호영분), 에이코(김은영 분)이 시대를 살아간 인물로 분해 이야기를 따라 간다.

무대와 시(時)의 사이


무대는 1951년도 백기만이 육필원고와 원고지를 넘기는 것은 영상으로 투사하고 기만은 시집(상화와 고월)을 회상하며 시인의 노래를 독창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불같았던 시인 이상화, 달이 되고자 했던 시인 이장희를 얘기하며, 배경은 1919년 과거 겨울의 회상으로 전환되고 수배를 받고 있는 저항시인의 삶을 투영한다. 1919년 대구 3·8 만세운동을 모의 하다가 하루 전에 발각되어 서울로 몸을 피한 이상화의 얘기가 겹쳐지고, <금성> 동인지를 만들게 된 사연과 에이코와 다방(자연장)에서의 만남 등 소소한 일상으로 전환된다. 어머니(박금련)의 자장가, 양주동과의 우정, 동경과 서울을 잇는 편지와 대화, 담교장에서의 추억들이 쏟아진다. 담교장은 이장희 시인 가옥(家屋)에 붙어 있는 사랑방 이름이다. 애국지사들과 문학인들을 불러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털어 놨던 장소로 알려진 공간의 얘기는 부친 사이에 고뇌하는 이장희 시인의 삶을 묵묵히 바라보며 동행한다.

동행하는 길을 시 음악으로 따라가는 것은 극적구성 보다는 시의 세계와 시대를 고뇌하는 내면이다. 담교장은 문인들 사랑방으로 내주었지만 이장희 시인이 들락거렸던 기록이 없다. 연출은 친일파 아버지로 인해 시적 언어로 강렬하게 저항할 수 없었던 경계에 선 시인의 내면을 투영한다. 담교장을 사이에 두고 민족시인 이상화와 시인들을 분리시켜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랑방에서 토해내고 민족의 울분을 삼킬 수 없었던 시인의 고뇌를 비춘다.

이상화는 이장희 시인을 향해 “시 쓰는데 계급, 사상, 배경, 그런 기 무슨 상관이라고? 어쩔 수 없는 환경이 형은 잘못은 아니잖아” 말하고 장희는 “친일파의 아들과 독립운동가의 자손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냐”며 뿌리친다. 영상 사용에 따라 극이 입체적으로 들어나는 것은 부친 이병학과의 대화 장면이다. 권위적인 아버지는 “일본 놈 손잡는 게 어때서! 다들 출세를 못해서 난리다, 난리” 영상 실루엣으로 처리되는 두 사람의 갈등과 대립을 마주하게 한다. 이장희는 “어째서 나라를 앗아간 놈들 밑에서 일하십니까?”라고 울분을 토해내며 시대와 아버지 사이에서 고뇌하는 독창 노래(혼란스러움) 소리와 기만, 상화, 에이코, 장희의 시인의 노래 합창이 이어지면서 무대로 투사된 영상은 자유로울 수 없는 박제된 금붕어를 멈추어 세운다.

이번 극단 구리거울의 시음악극 <푸르고 푸른>은 시로 암울한 시대를 고뇌하는 청년시인들의 삶과 비극적인 운명을 선율을 따라 시음악극으로 묶고 라이브반주 피아노 멜로디로 포개 놓는 시도는 공감했으나, 극적 구성이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 인물을 겹쳐놓는 장면 전개는 삶을 이해하는데 느슨했다. 또한 극중 인물들을 시로 소환하고 있는 네 명의 배우들도 음악(뮤지컬)적 기량은 좋으나 뮤지컬 넘버를 벗어나 장면에서 발화시키는 연기는 극중 인물의 마음을 따라 가는데 노래 소리만큼 인물과 감정을 잡아당기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다방(자연장)에서 네 명의 극중 인물의 삶을 경쾌하게 견인하면서 극의 템포감을 높였고 피아노 라이브 반주와 변주되는 시인들 시는 응축된 시대의 절망과 고뇌를 시음악극으로 들려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극단 구리거울의 <푸르고 푸른>은 시를 듣게 하는 무대였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