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의 핵심은 짧은 패스를 통해 위로 올라가는 점유율 축구다. 발밑 기술이 좋아야 살아남는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조현우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선 조현우의 발 밑 기술 약점이 부각될 여지가 없었지만 벤투호에선 다르다. 지난 평가전에서의 활약만 놓고 보면 확고한 주전으로 꼽힐 수 없다. 섣불리 그의 선발을 예상할 수 없는 이유다.
골키퍼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업의 시작이다. 긴 패스를 통해 무작정 전방으로 공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짧은 패스를 통해 상대 압박을 이겨내 동료 선수에게 전달해야 한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는 기본이다. 수비 진영에서부터 상대의 압박을 유연하게 벗어나기 위해 수비수뿐만 아니라 골키퍼도 빌드업에 가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패스를 주고받을 선택지가 늘어나 더욱 공격에 역동성을 갖추게 된다.
조현우는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과 멕시코, 스웨덴과 같은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눈부신 선방능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벤투호에서 만큼은 그러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달 파나마전에선 첫 출전이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잔 실수의 연속이었다. 조현우는 2-1로 앞서 있던 후반 3분 성급한 마음에 황인범에게 패스를 건넸고, 이는 남태희의 백패스로 이어져 상대 공격수 블락부른에게 실점을 허용했다. 볼 소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수를 자초한 예다.
김승규는 조현우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9월 A매치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코스타리카와의 첫 경기를 무실점으로 끝낸 데 이어 지난달 우루과이전까지 안정적으로 끝마쳤다. 전임 신태용 감독 체제에선 835분을 뛰면서 대표팀 골키퍼 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으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조현우의 신들린 활약으로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그때의 설움을 벤투호에서 잠시나마 풀 수 있게 됐다. 빌드업 패스 성공률에서도 경쟁자인 조현우와 김진현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다.
현재 벤투호에서 확실한 주전 골키퍼는 없다. 벤투 감독 부임 이후 4차례 평가전에서 김승규(2회), 김진현, 조현우(이상 1회)가 번갈아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11월 평가전을 통해 안정적인 후방 빌드업을 가장 잘 해내는 이가 2개월 후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주전 골키퍼 장갑을 낄 것으로 보인다.
조현우도 더 안심할 수 없게 됐다. 호주 원정 경기를 앞두고 공식 인터뷰를 통해 “소속팀에서 발기술과 킥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훈련을 했다. 더 노력해 경쟁을 이겨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평가전에서 노출된 자신의 단점들을 보완하고 벤투호에서 더 성장해야 한다. 뛰어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한 수동적인 선방만이 전부가 아니다.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주전 골키퍼는 김승규의 차지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