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55)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결국 자진사퇴했다. 야구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선 감독이 14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LG 트윈스 오지환(28)과 삼성 라이온즈 박해민(28)으로 대표되는 병역 미필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불거졌다.
선 감독은 지난 4월 9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예비 명단 109명을 발표했다. 이 당시부터 오지환과 박해민이 포함됐다. 당시에도 오지환 등은 병역기피 논란이 일고 있었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11일 최종 명단 24명을 발표하면서 이들을 포함시켰다. 지난 8월 13일 4명의 교체 명단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라며 “병역 특례에 대한 시대적 비판에 둔감했고, 금메달 획득이라는 목표에 매달려 시대의 정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야구대표팀은 저조한 경기력을 보이며 대만과의 예선전에서 패했다. 여론은 악화됐다. 몸값 거품 논란까지 일었다. 그럼에도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귀국하는 대표팀을 향한 환영의 목소리는 없었다. 이에 대해 선 감독은 “금메달 세리머니조차 할 수 없었다”라며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국회는 물론 병무청 등 정부기관까지 나서 병역 특례 폐지 검토에 돌입했다. 정운찬 KBO 총재는 지난 9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오지환 사태’와 관련해 국민 정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과거의 기계적 성과 중시 관행에 매몰되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선 감독의 침묵은 길어졌다.
그런 사이 선 감독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선 감독은 이에 앞서 지난달 10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사과했지만, 선수 선발과정에서 부정 청탁은 없었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리고 지난달 10일 국정감사장에서도 그는 당당했다. 오히려 선 감독을 추궁하던 국회의원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분위기 반전이 일어났다. 정운찬 총재가 지난달 23일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정 총재는 “선수 선발과 관련한 비판을 선 감독에게 알렸다면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사과한다”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사견임을 전제로 전임감독제에 대해 반대한다고 했다. 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저의 자진 사퇴가 총재의 소신에 부합하리라 믿는다”는 말로 자진사퇴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선 감독이 자진사퇴했다. 야구대표팀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용퇴로 받아들여진다. 훌륭한 결단이다. 선 감독이 개인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받고 선수를 선발했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게 끝나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아시안게임 등이 프로야구 선수들의 합법적인 병역 회피 통로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번 사태의 해결 방안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야구대표팀에 병역 미필자를 끼워넣어온 관행을 깨는 것이다. 문제는 구단들에 있다. 자신들이 마음먹은 대로 병역 미필 선수를 대표팀에 포함시켜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 감독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닌 것이다. 이번 사태를 불러온 해당 구단 책임자들도 공개 석상에 나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말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놔야 할 시점이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