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에너지 백년대계, 국민투표로 정해야

입력 2018-11-14 14:28 수정 2018-11-14 14:29

배준영 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국회 초대 부대변인

에너지 정책이 갈 지(之)자다. 정부는 탈원전을 국정과제로 삼더니 지난 5일 여야정 청와대 회의에서는 ‘원전기술력과 원전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원전산업수출기반구축사업 예산은 50% 삭감됐고 원전현장인력양성사업, 원전부품 R&D 사업, 원전산업 홍보비는 0원이다. 한편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워킹그룹은 204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40%까지 높이는 미래를 제시했다.

우리는 작년 신고리원전 건설에 관한 공론화 위원회 소동으로 1천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증권시장의 가장 큰 악재가 불확실성이듯 에너지 정책도 그렇다. 이렇게 에너지 정책이 춤을 추는 동안 수출은 밀리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태를 겪었던 러시아마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인도, 터키 등에서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이미 1,300억달러 규모의 33개 원전을 수주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의 기조를 정하는 것은 국민의 총의를 모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에너지 정책은 백년지대계이기 때문이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원자력연구소 실험용 원자로건물에 가면 빛바랜 사진이 현관에 있다. 1959년 연구소 공사의 첫 삽을 뜨는 모습이다. 1950년대에 대한민국 정부는 127명의 엘리트를 미국의 아르곤원자력연구소에 유학을 보냈다. "한국 같은 자원빈국에서는 사람머리에서 캐어내는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한 학자의 충고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우리 산업의 쌀이 철이라면 밥솥은 원자력이 담당해왔다.

둘째, 모든 국민에게 전기세 인상을 용인할지 물어야 한다. 원전은 가성비가 높다. 독일은 반원전 정책으로 지난 10년간 가정용 전기요금이 42% 올랐다고 한다. 우리는 화석연료를 수입한다. 태양열이나 풍력은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전력생산이 일정치 않다. 햇빛이나 바람이 없을 때는 화력발전소를 더 돌려야 하는데 발전회사들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는 등 비용이 더 지불해야 한다. 한국전력과 자회사들이 수익률이 떨어져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도 악재다.

셋째, 모든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영향이 있다. 1995년 인천시민사회의 반대로 백지화된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사업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원자력이 공포의 대상인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원전은 간접적인 분리상태에서 전력을 일으키고 6.5도 강도의 지진을 버티기 때문에 여태껏 단 한건의 사고도 없었다. 그래서 UAE 수출에 성공했을 것이다. 오히려 탈원전 속에 작년 석탄발전량은 10% 증가했다. 온실가스가 2,000만톤이 더 배출되고 미세먼지가 늘어나 건강을 더 위협한다.

원전을 전문영역으로 몰아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 것부터 문제였다. 반드시 국민에게 물어서 원자력발전과 대체에너지의 사용에 대한 미래에 대해 결정하게 해야 한다. 원전의 신설과 유지 결정, 화석원료에 의한 발전 비율, 전기료 인상, 에너지 산업의 일자리도 주제다.

오스트리아는 원자력발전소가 없다. 1978년 국민투표로 최초 원전인 즈벤텐도르프 원전의 가동여부를 정했는데 불과 3만여 표 차이로 가동 직전 원전과 핵에너지정책이 무덤으로 갔다.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350㎞의 도나우강의 9개의 댐 덕에 국가에너지 사용량의 23%, 총 전력생산량의 65%를 수력·풍력으로 만든다. 오스트리아 방문 때 프로이데나우 수력발전소를 갔었는데 200만 명이 사는 비엔나시의 절반 넘는 가구 전력을 충당하는 댐이라고 한다.

그럼 언제가 적절할까? 사실 지난 6.13 지방선거 때가 적기였다. 지금으로서는 국민투표를 전국선거와 동시에 할 수 있는 시기는 내후년 총선이 가장 빠르긴 하지만, 가급적 빨리 국민의 총의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다못해 정부 개별부처의 1급 공무원 숫자 같은 것도 법률로 정한다. 그런데 국가 백년대계를, 국민 개개인의 지갑과 건강이 걸려있는 사안을 청와대 지시에 의해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없다. 대통령도 국민투표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 국민투표를 행할 수 없게 입법이 미비하다고 하니 국회도 속히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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