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의 민낯… ‘한국의 스티브 잡스’ 꿈꿨지만 돌아온 건 ‘갑질 횡포’

입력 2018-11-13 16:39 수정 2018-11-13 16:44
게티이미지뱅크

“2년 반 동안 총 15만 원 받았습니다.”
“너 이거(내 주먹) 피하면 회사 내쫓기는 거야.”
“셔츠 색상을 잘못 입고 출근했다고 골프채로 맞았습니다.”
“과로로 폐를 잘라냈습니다.” “김앤장이랑 싸워서 이길 수 있겠냐.”

최근 국내 대표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 창립자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인 ‘갑질’ 행적을 담은 영상은 공개 직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비단 이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젊은이는 IT 업체의 갑질 횡포를 ‘젊은 열정’으로 버텨야 했다. 부당한 대우의 형태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도를 넘는 폭행·폭언’, ‘강제해고’, ‘성추행’ 등 다양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뉴시스

‘제2의 양진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IT 업계 종사자들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 주최로 열린 ‘IT 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에서 자신들의 사연을 털어놨다.

디자이너 김현우(25)씨는 한 IT 스타트업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다. 김 씨는 근무하는 동안 받은 임금이 용돈으로 받은 15만 원이 전부였다고 했다. 회사 대표는 구두 계약으로 회사 ‘지분’을 약속했고 이를 믿은 김 씨는 사실상 무급으로 일했다.

업무 환경도 열악했다. 김 씨는 2년 반 동안 회사에서 숙식 생활을 강요당했다. 번듯한 숙직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고 편의점 음식을 먹는 생활을 지속했다. 개인물품 소지나 사생활도 금지당했다.

이를 어기면 대표의 폭행을 견뎌야 했다.
김 씨는 “사비로 미니 선풍기와 LED 라이트를 샀다는 이유로 대표에게 폭행당했다”면서 “대표가 손을 들어 때리는 자세를 취해 피하려고 하자 ‘너 이거 피하면 회사 내쫓기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동료는 셔츠의 색상을 잘못 입고 출근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골프채로 맞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 주최로 열린 'IT노동자 직장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에서 피해자 김현우(25)씨가 발언하고 있다. 서윤경 기자

김 씨는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용납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며 스타트업 회사들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양도수씨는 IT 관리자로서 롯데 하이마트 쇼핑몰 근무를 하던 중 폭언·폭행·강제해고를 당했다. 앞서 2013년 다른 IT 회사에 다니던 양 씨는 폐에 염증이 생겼지만 과로에 의한 면역력 저하로 항생제가 듣지를 않았다. 결국 오른쪽 폐 절반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양진호 동영상처럼 수십 명의 동료가 보는 가운데 폭언·폭행을 당했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민주노총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에서 입수한 직장 갑질, 폭행 사례들도 다수 발표됐다.

사례조사에 따르면 회사로부터 일방적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A 씨는 “노동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이유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가 “김앤장이 법률 대리법인으로 되어 있다. 김앤장 이길 수 있냐”고 협박을 받았다. IT 프리랜서로 일하는 B 씨는 지시받은 업무에 대한 의견을 말하던 상황에서 관리자에게 “이런 XX!” “웃긴 XX네 이거!” 등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이외에도 ‘채식주의자 직원에게 육식 강요’, ‘볼에 뽀뽀를 시키는 성추행’ 등 수많은 사례가 발표됐다.

이 의원은 “양진호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동영상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IT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며 “이번 ‘양진호 사태’가 순간의 이벤트로 지나가지 않도록 증언자분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국회에서 대안을 찾아 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태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