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일본 도쿄역 앞에 거대한 욱일기를 든 시위대가 등장했다. 300명이 넘게 모인 이들은 거리를 행진하는 내내 “죽어라 한국”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혐한(嫌韓) 집회에 불씨를 당긴 것은 지난달 30일 한국 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2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94)씨 등 4명이 일본 철강기업인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이 이씨 등에게 각 1억원씩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에서 우익 세력이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들어 남북과 북미가 만나는 등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는 과정에서 재팬 패싱 지적이 나온 뒤 납치 문제 해결에 목매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화해 무드를 조성하자 잠잠해졌던 혐한시위가 재개된 것이다.
일본 우익 단체 ‘행동하는 보수 운동’은 집회 안내문을 통해 “욱일기, 일장기 대 환영”이라고 안내한 뒤 집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자이니치(재일교포) 집에 가라” “다케시마(독도) 돌려줘” 같은 극단적인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한국과의 단교(斷交)였다. 손에는 ‘한국에 분노. 일한(日韓) 단교’라는 현수막이 들려있었고, “한일 기본조약을 준수하지 않는 한국과 단교해야 한다” 같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들은 도쿄역과 긴자 등 한국인들이 관광차 자주 방문하는 곳에서 약 4㎞를 2시간 동안 행진했다.
호리키리 사사미 ‘행동하는 보수운동’ 도쿄지부장은 “지금까지 일본인은 한국인의 부조리를 참아왔다”며 “하지만 이번 한일청구권협정 파기는 국가 간의 약속을 짓밟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한국은 일본을 미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이번 시위와 관련해 “일본 경찰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며 우익 시위대의 과격행위 차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도 시위대에 접근하는 것을 자제하는 등 신변 안전에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