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가운데, 해당 고시원에 산 생존자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가다’(일용직)하는 사람들이었다”며 “얘기를 들어보니 기초생활수급자도 많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날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 고시원 3층에 거주한다고 밝힌 이춘산(63)씨는 “이곳에 산 지 6개월이 지났다. 월 방세는 32만원 낸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화재 당시 탈출한 뒤 이날 오전 10시40분쯤 현장으로 돌아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는 “오전 4~5시쯤 고함소리가 들렸다”며 “처음에는 ‘뭐야 뭐야’ 이러길래 또 술 먹고 싸우나 보다 하고 문을 안 열었는데 갑자기 ‘악!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천장에서 불과 연기가 확 와서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라며 “바로 문을 닫고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마침 옆에 에어컨 실외기가 있었다”며 “그것을 잡았는데 이후로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느새 발이 땅에 닿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옆을 보니 이미 2~3명이 탈출했고 불길이 거셌다고도 덧붙였다.
앞서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8시30분 브리핑에서 화재로 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이후 부상자 1명이 더 사망해 현재까지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추후 사상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이다. 1층은 일반음식점, 2~3층이 고시원이다. 소방당국은 2층에 24명, 3층에 26명, 옥탑방에 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거주자들은 대부분 40~6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목격자가 3층 출입구 쪽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301~303호 쪽인데, 이미 화재가 거센 상황이라 다른 호실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하려 해도 출입구가 사실상 봉쇄돼 대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도 전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3층 거주자다.
해당 건물에는 스크링클러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건물이 노후화됐고 과거에 지어져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며 “비상과 비상탈출구, 탈출용 완강기는 설치됐지만, 사상자들이 당황해 완강기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씨도 “비상벨소리를 들은 건 없다”며 “스프링클러도 작동 안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5시에 출동 지령을 받고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화재가 심했고, 인명피해가 우려돼 21분쯤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소방당국은 소방관 100여명, 장비 30대를 투입해 오전 7시쯤 완전히 불을 껐다.
권중혁 안규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