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이르면 9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교체할 방침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동시에 바뀔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와 기재부에 따르면 김 부총리는 이날 열리는 공정경제점검회의에 불참한다. 부총리가 빠지면 안되는 중요한 회의여서 9일 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9일로 예정됐던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취소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공식 취소 사유는 예산 소위에서의 예산 심사가 덜 끝났기 때문이지만 인사 발표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 내에서는 교체시점을 두고 문 대통령 순방 전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은 13일부터 5박6일간 아세안 정상회의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와 파퓨아뉴기니를 방문한다. 10~11일이 주말과 휴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 부총리 교체 인사는 이르면 9일, 늦으면 12일로 예상된다.
김 부총리 후임으로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사실상 내정됐다. 강원도 춘천 출신인 홍 실장은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29회 출신인 홍 실장은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해 기획예산처 장관비서관, 예산기준과장 등을 거친 ‘예산통’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박봉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 비서관, 2006년엔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보좌관을 지냈다.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 대변인과 2012년 기획재정부 정책조정실장을 거쳐 2013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에 파견돼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렸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실 기획비서관,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을 맡았다. 홍 실장은 현 정부들어서는 초대 국조실장으로 발탁됐다. 업무처리 수준이 높아 이낙연 총리가 각별히 신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번 인사 역시 이 총리 추천이란 설이 지배적이다. 홍 실장이 경제부총리로 발탁될 경우 후임 국무조정실장으로는 노형욱 국무조정실 2차장이 거론되고 있다.
무너지는 상고 신화
김 부총리는 상고 출신으로 유명세를 타며 부총리에 임명됐다. 그러나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규제강화 등 경제정책 전반에서 청와대와 불협화음을 내며 사실상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정권 출범 초기 증세 논의가 나올 때부터 존재감을 잃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률 등 소득성장 정책을 놓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김 부총리는 현정부 3대 경제정책 가운데 ‘혁신성장’을 맡았지만 성과가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은 아직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김 부총리를 공개 질책했다. 지난달 24일 김 부총리가 발표한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방안’도 공유경제 확대 방안 등에 있어 부족하다는 지적이 컸다.
김 부총리는 교체가 굳어진 뒤 청와대에 작심한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달 18일 국정감사에서는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동의하냐”는 질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 6일 장하성 실장의 경기 진단에 “정책실장이 아마 자기 희망을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지난 9일에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고 말했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장 실장 교체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김 부총리와 함께 동반 교체된다는 설과 시기가 늦춰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올 연말 혹은 내년 초로 거론되는 청와대 인사에 맞춰 정책실장을 교체한다는 설도 나온다. ‘왕수석’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정책실장 후보로 거론돼 왔지만,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권에서도 김수현 비토론이 커지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조윤제 주미대사나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 김연명 국정과제지원단장 등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김수현 사회수석이 정책실장이 되면 김 단장이 사회수석으로 발탁될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이진석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의 승진도 점쳐진다.
문 대통령이 두 경제사령탑을 교체하는 것은 개선되지 않는 고용지표와 하향세를 달리는 경제성장률 전망치 때문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2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 모두가 완벽한 팀워크로 고용상황에 정부가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줘야한다.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달라”고 밝힌 바 있다. 경제정책을 둘러싼 ‘김앤장’의 노선갈등이 권력내부투쟁으로 비쳐지는 것이 청와대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실장은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속도와 일자리 해법 등을 둘러싸고 의견 차이를 나타냈다. 혁신성장을 맡은 김 부총리는 ‘성장’을,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해온 장 실장은 ‘분배’를 더 강조해왔다. 청와대는 ‘경제사령탑 투톱 교체’ 카드를 바탕으로 야권과의 협치를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