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를 먼저 받겠다”며 당의 징계 결정을 늦춘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경찰 출석을 한 차례 연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스스로 경찰 출석을 늦춘 뒤, 이를 핑계로 징계를 논의하는 당 회의에도 불참한 것이다. 대신 음주운전 피해자인 윤창호씨의 병원을 찾았다. 징계 수위를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 끌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8일 “이 의원이 지난 주말 출석 의사를 밝혔지만, 여수에서 날씨 문제로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출석할 수 없다고 다시 연락해 왔다”고 밝혔다. 아직 다음 출석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 의원도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경찰 출석이 한 차례 연기된 게 맞다”며 “이번 주 안에 경찰에 출석한 다음에 14일 열리는 윤리심판원회의에는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은 7일 윤리심판원 회의를 열고 이 의원의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이날 오전 돌연 출석 연기를 요청했다. ‘경찰 조사 이후 당기윤리심판원에 출석하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의원의 소명을 듣고 난 뒤 징계를 결정하려던 민주평화당은 결국 징계 수위를 결정하지 못했다. 징계 자체가 연기된 셈이다.
이 의원은 음주 운전이 적발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음주 운전을 사과하며 “당의 정해진 절차를 모두 응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당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왜 ‘경찰 출석’을 당 차원 징계의 ‘조건’으로 달았을까.
표면적으로는 ‘사고 경위를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 의원은 “음주 운전은 인정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금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 조사에서 그 부분을 명확히 한 뒤 당에 소명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당 핵심 관계자도 “이 의원이 회식이 끝나고 잠을 잔 뒤에 술이 깼다고 생각하고 운전대를 잡았다는 취지로 설명하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와 달리, 회식을 마친 뒤 곧바로 운전대를 잡은 게 아니라는 취지다.
하지만 음주 운전을 하게 된 경위는 경찰 조사와는 무관하다. 이미 경찰의 음주 단속에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7%로 측정됐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도 “음주 운전 경위는 중요하지 않다. 음주 운전을 했다는 사실만 갖고 혐의를 판단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의원이 당의 징계를 미루면서 여론 추이를 지켜보고, 결과적으로 당이 징계 수위를 낮추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사고 경위에 다른 부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음주 운전의 ‘고의성’을 약화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종합해보면 ‘음주 운전을 할 생각은 없었다’는 취지로 당에 소명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를 통해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한 뒤, 이를 근거로 제명보다 낮은 ‘당원자격정지’ 수준의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14석의 의석수를 갖고 있는 민주평화당 입장에서도 ‘제명’과 같은 중징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평화당 당규상 징계는 ‘경고’ ‘당직자격정지’ ‘당원자격정지’ ‘제명’이다. 이미 이 의원이 원내수석부대표에서 사퇴해서 당직자격정지는 의미가 없다. 민주평화당이 ‘당원자격정지’ 징계를 내리자니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여론의 비판이 두렵고, 제명 조치를 하자니 당세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당의 징계 조치에 앞서 윤씨 병문안에 나선 것도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씨의 친구들은 7일 저녁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의원의 병문안 소식을 알렸다.
이 의원은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윤창호법’ 발의에 참여한 지 9일 만에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