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고지식한 아이

입력 2018-11-07 14:34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 J는 날씨가 추워졌는데도 반소매 옷만 입는다. 또 치마는 절대 입지 않으려 한다.

J는 고지식하여 선생님으로부터 한번 들은 얘기는 예외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친구들이 살짝 규칙을 어기는 걸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이르는 일이 반복한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는 ‘고자질하는 아이’가 되었다. 부모가 아이와 약속을 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지키지 못한다면 절대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원하는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하면 관철이 될 때까지 집요하게 졸라서 부모를 지치게 만든다.

기질적으로 보상 의존성이 낮은 아이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요구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 변화에 대해 저항한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방식만을 반복하려 하며, 이런 행동이 고집스럽고 말을 안 듣는 것으로 오해 받기 쉽다.

또 고지식하여 사고의 융통성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남의 의견이나 생각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상대적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매우 독선적으로 보일 수 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어른에 대한 반항적인 행동으로 말을 안 듣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질적으로 보상의존성이 낮거나 고지식하여 사고의 융통성이 낮은 아이들은 아이의 특성을 인정하고 기다려 주면 나이가 들면서 문제 해결 전략이 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 하지만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면 이에 대한 저항으로 아이는 자기의 생각을 더욱 완고하여 주장하면서 사고가 더욱 경직되어 간다.

J처럼 선생님이 정해준 규칙을 반드시 잘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는 아이를 야단치거나 규칙을 지키는 게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러 옵션이 있음을 알려 준다. 고자질을 한다고 아이를 혼내거나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기 보다는, 규칙을 지키는 건 옳은 일이지만 항상 예외도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선생님에게 고자질을 하는 방법 외에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지 아이와 대화해 본다. 아이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떠올려 보게 하고 경청해준다. 브레인 스토밍을 하듯이 다양한 전략을 아이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하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 ‘선생님께 이르기 전에 친구에게 직접 말해 준다’ ‘집에 와서 엄마와 먼저 얘기해 본다’ 등등.... 생각하고 말해 보면서 아이의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고 사고가 자라난다. 고자질 당하는 친구가 느낄 감정도 역지사지로 상상해 본다.

타협하는 기술을 부모가 보여 준다. 반소매 옷을 고집하는 아이에게 강제로 옷을 갈아입히기 보다는 며칠간은 아이가 원하는 옷을 입게 해주고 ‘춥다고 느껴지면 언제든지 긴소매 옷을 입을 수 있다’고 말해 준다. 물건을 사달라고 고집을 늦추지 않는 아이는 고지식한 아이특성에 맞게 규칙을 정해 줄 수 있다. 예컨데 ‘한 달에 두 번 장남감을 살 수 있어. 둘째 넷째 토요일 12시에. 한번에 얼마짜리를 살 수 있는데, 좀 더 비싼 걸 사려고 하면 참았다가 돈이 모아지면 그 다음 2주 후에 사면 되겠지?’라는 식이다.

하지만 아이가 단순한 반항으로 고집을 부릴 때는 부모의 양육태도를 점검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정하거나 부탁하는 식도 안 되지만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화를 내거나 부모의 권위로 억눌러서도 안 된다. 부모가 나름의 원칙을 가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안돼’ 라고 단호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