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훔친 아이를 체벌하다 아동학대로 의심돼 자녀와 분리조치된 일이 발생했다. 아빠는 “아이를 잘 키우려다 생이별하게 됐다”고 호소했고, 기관은 “법 절차상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항변했다. 전문가들은 훈육과 학대에 대한 모호한 경계, 부모 교육이나 아동 보호에 대한 미진한 제도적 장치가 만든 ‘불상사’이자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은 서정호(가명·41)씨의 아들 민규(가명·10)가 지난달 8일 동네 문구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리면서 시작됐다. 민규는 “학원에서 잘한다고 준 경품”이라며 거짓말까지 했다. 문구점 주인의 연락을 받고 달려간 서씨는 그 자리에서 민규의 뺨을 때렸다. 아이는 똑같은 잘못을 이미 두 번이나 저질렀다고 한다.
서씨는 집에 돌아와 다시 훈육을 시작했다. 감정이 격해져 매질도 세졌다. 플라스틱 옷걸이로 10대를 때렸다고 한다. 반성을 위해 “손들고 있으라”고 지시하고 상담을 위해 가까운 아동복지기관 직원을 불렀다. 서씨는 8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홀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줄곧 이곳의 도움을 받아 왔다.
서씨의 연락을 받고 온 직원은 코피를 흘리고 있는 민규가 눈에 들어왔다. 서씨는 직원 앞에서도 민규의 뺨을 한 차례 때렸다. 직원은 민규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와 “잠깐 아빠랑 떨어져 있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자(父子) 분리조치가 곧 시작됐다.
서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잘 키우려는 마음이었다. 무자비하게 학대를 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서씨는 “주변에서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있는 가정보다 더 잘 키웠다’는 칭찬도 받아 왔다”며 “(사건 당시) 애지중지 돌봐온 아이가 나를 속였다는 사실에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실망감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판단은 달랐다. 한 달여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서씨를 아동학대 행위자로 본 것이다. 기관 관계자는 “민규는 여러 번 아버지에게 맞았고, 현재도 아버지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어 집으로 돌려보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고자 역시 “당시 서씨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신고를 했다. 나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이성적으로 대처했다면 바로 분리조치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모습을 보여 아동 분리까지 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고 의무자가 신고를 안 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민규는 현재 아동학대 일시보호소에서 최소 2개월을 머물러야 한다. 보호처분 임시조치 기간이다. 이때 경찰 조사와 아동보호전문기관 전문가 상담 등이 이뤄지고 그 결과에 따라 원가정 복귀나 시설 이동이 최종 결정된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직 사회가 부모에 대한 권한을 아동의 보호받을 권리보다 중요시하고 있다”며 “(훈육과 학대의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릴 때 훈육으로 맞고 자란 세대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체벌이지만 문제 행동을 고치도록 상담치료를 받는 방식도 있다”며 “분리조치가 된 기간 체벌은 학대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아동뿐만 아니라 학대를 한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