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뜨겁고 차가운 인간 벤투의 선발 철학

입력 2018-11-06 07:00
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호주 원정 평가전에 나설 3기 대표팀 명단을 발표한 후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11월 호주 원정 경기에 나설 ‘벤투호 3기’ 명단을 발표했다. 이번 11월 A매치는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을 앞두고 갖는 마지막 실전 점검 무대다. 이번 3기 명단이 사실상 아시안컵에 출전할 정예요원이라는 뜻이다. 3기 명단 발표에 더욱 시선이 집중됐던 이유다.

이번 명단 발표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벤투 감독의 선발 철학이다. 맺고 끊는 것이 명확했다. 지도자로서 벤투 감독의 성격이나 성향 역시 알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래 지난 석 달 동안 3차례 A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며 단 한 순간도 질문에 망설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선수라 판단되면 뽑았고 그뿐이었다.

장현수. 뉴시스

믿음에 있어서는 뜨겁게

첫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그랬다. 첫 부임 당시 장현수의 선발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결정적인 실책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망설임 없이 장현수 카드를 뽑아 들었다. 일각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도 벤투 감독은 “오랜 시간 많은 포지션에서 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임을 확인했다. 기술적으로 팀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선수로 판단하고 있다”고 그의 선발 논란을 단숨에 일축했다.

이후에도 9월 칠레와 친선경기(0대 0 무승부)에서 후반 종료 직전 백패스 실수로 위기를 자초해 벤투 감독의 눈 밖으로 밀렸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신뢰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난이 일자 “지도자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선수는 예외 없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며 “나는 선수를 평가할 때 한 번의 실수만 보지 않는다. 수많은 움직임과 판단 등 모든 것을 평가한다. 지난 두 경기에서 아주 잘했다”며 위축된 장현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장현수는 10월 A매치에서 그간의 실책을 만회하는 모습을 보이며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일각의 논란을 일축했던 벤투 감독의 한결같은 믿음이 뒷배경이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장현수는 결국 자신을 향한 벤투 감독의 신뢰에 보답하지 못했다. 현행 병역법에 따라 체육 봉사활동을 이수해야 했지만 이에 관한 서류를 일부 조작했던 사실이 적발됐다. 이에 따라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일 그의 대표 선발 자격을 영구 박탈함과 동시에 벌금 3000만원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젠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병역 문제에 대한 국민 정서에 둔감할 수 있는 외국인으로서 이러한 중징계 조치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울 법도, 손흥민과 달리 예고되지 않은 불참 통보에 당황했을 법도 하지만 긴 말은 하지 않았다. 3기 명단 발표와 함께 장현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도 집중 관심사였으나 기대와 달리 답변은 의외로 싱거웠다.

“장현수는 경기력 면에서 전력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전력 이해도 경험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그간 아꼈던 카드를 꺼내 들 수 없게 된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공정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겠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 이상의 말을 아꼈다. 이미 결정된 내용에 따라 빠르게 대안을 찾겠다며 현실을 직시했다.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대표팀에선 함께할 수 없지만 프로경력에서 행운을 빈다”며 짧은 인연을 함께 했던 애제자에 대한 응원 역시 함께였다. 칼 같은 성격인 벤투였지만 아쉬움만큼은 솔직했다. 인간냄새가 다분히 나는 마지막 인사였다.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소집된 축구 국가대표 이승우(왼쪽), 황의조가 8일 오후 경기 파주시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 뉴시스

선수단 기용은 차갑게

선수단 기용에서는 확실한 단호함을 보였다. 벤투 감독은 세밀한 위치선정과 지능적인 플레이를 요구하는 성격으로 주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그랬다.

골키퍼와 수비수들은 물론 모든 선수에게 긴 크로스나 롱볼보다는 짧은 패스로 위로 올라가는 방법을 주문하고 있으므로 함께 발을 맞춘 시간과 조직력을 우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2기 명단을 발표하며 “토대가 중요하다. 토대를 만들어야지, 새로운 선수를 뽑을 수 있다. 지난 두 경기는 만족스러웠다”는 그의 말에서 이러한 의도를 확인해볼 수 있다. “축구만 고려한다. 선수 선발 기준에 들어맞으면 뽑는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한 후 선발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승우와 함께 김승대와 김문환, 정승현 등 그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거나 출전시간 보장에 어려움을 겪었던 선수들을 뽑았으면서 왜 쓰지 않느냐는 비아냥과 함께 일각에선 플랜B가 부실하다는 지적 역시 있었다.

그런데도 벤투 감독은 베스트 11에 집중하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16일 선발 명단을 대거 교체하며 객관적인 전력상 약체였던 파나마전을 제외하면 이전 3차례 경기에선 익숙했던 전술과 선발 명단을 들고 나섰다.

이번 이승우의 명단 제외에서도 벤투는 단호했다. 이승우는 지난 5월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신태용호 시절 처음 태극마크를 따내며 이후 러시아 월드컵까지 합류, A매치 6경기를 뛰면서 대표팀의 차세대 유망주로 인정을 받았다.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의 활약으로 국내에서도 단단한 팬층을 확보하며 현장 티켓 동원력까진 그다. 비록 지난 벤투 체제에선 첫 데뷔전이었던 9월 7일 코스타리카전을 상대로 7분간 그라운드를 밟았던 것이 전부였지만 지난 10월 A매치 명단에 포함되며 추후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손흥민이 소속팀 토트넘과의 합의로 11월 A매치에 참석할 수 없어 2선 공격진에 변화도 불가피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승우를 제외했다. 탈락시킨 이유에 대해선 “해당 포지션에 경쟁이 치열하다. 동일 포지션에 능력이 좋은 멀티 플레이어들이 포진 돼 있다. 경험 많은 선수들도 있고 이승우는 지난번 소집됐지만 많이 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요약건대 이승우가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늘여 말한 셈이다.

이승우가 이탈리아 무대에서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며 소속팀 활약이 미미하다는 이유는 그 이전 문제였다. 실전 감각 역시 대표팀 선수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요소지만 벤투 감독은 자신의 전술 이해도를 먼저 확인하고 있다.

김영권의 사례가 그렇다. 그는 중국 슈퍼리그 외국인 용병 정책으로 인해 후반기 선수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아 경기조차 나설 수 없다. 현재 국내에 머물며 개인 훈련에만 매진하고 있다. 실전 감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 부분은 벤투 감독으로서는 큰 부담일 수 있다. 그런데도 대표팀에서 굳건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낸 점을 높이 사 그를 핵심으로 기용하고 있다. “소속팀 활약이 부족해도 필요하면 발탁한다”는 그의 선발 원칙이기도 하다.

3차례 선발 과정에서 살펴봤을 때 그 기준엔 오직 자신의 원칙과 판단만을 내세우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기성용의 은퇴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떠난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돼 있던 내용.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에 대해서도 “그 어떤 선수하고도 아시안컵 이후 은퇴한다는 공감대를 나눈 적 없다. 당장 아시안컵뿐만 아니라 이어질 월드컵 예선 등 중요한 목표 달성에 있어 도움이 될 선수들은 계속해서 일원으로 포함한다”고 단언했다.

여론과 축구협회를 비롯해 외부의 주문이나 압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은 벤투 감독에게 기대했던 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국내파 감독이 아닌 외국인 감독을 외쳤던 이유기도 하다.

사실 벤투 감독은 부임 전 지도자 경력에 내림세를 걷던 시점이라 그의 이력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반박하듯 부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축구 발전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며 자신의 분명한 축구철학과 함께 비전을 제시했고, 첫 발걸음을 뗀 시작점에서부터 무패의 성적을 자랑하며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있다.

직접 K리그 경기장에 가 선수들이 몸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연령별 각급 대표팀 지도자들과 자신의 전술과 철학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 또한 이례적이다. 대표팀은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외국인 지도자 선임과정에서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적 부진으로 대표팀에 대한 열기가 식어 축구문화가 쇠락하는 일이 되풀이돼왔다. 대표팀 경기력이 한국축구 발전과 직결된다는 것은 최근 분위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벤투 감독이 선수 선발에 있어서 자신만의 분명한 가이드라인과 탈락 선수에 대한 분명한 원인을 제시한다는 점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새로 부임한 벤투 감독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선수단의 목표의식과 동기부여는 분명해 보인다. 최종 종착지인 2022 카타르 월드컵을 향하는 벤투호의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