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4번은 특별한 숫자다. 9명의 타자 중 ‘팀의 해결사’라는 중책을 맡는 번호다. 팀이 이겨도 4번이 부진하면 그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가혹하지만 4번은 팀의 운명을 짊어졌기에 4번이다.
SK 와이번스가 일찌감치 2승을 거두며 싱겁게 끝날 것 같았던 2018 한국프로야구(KBO) 플레이오프가 지난달 31일 넥센 히어로즈의 4차전 승리로 최종전까지 이어졌다.
2일 5차전 전까지 두 팀 모두 올 시즌 나란히 43홈런을 친 주포들이 잠잠하다는 점이 고민거리였다. SK 4번 로맥은 플레이오프 16타수 2안타로 0.125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3차전에서 솔로 홈런 하나를 치긴 했지만 4차전은 다시 무안타로 침묵했다.
넥센 4번 박병호도 크게 부진했다. 박병호는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홈런 하나를 포함해 멀티히트를 날린 뒤에는 침묵 중이었다. 특히 플레이오프에서는 14타석에 나서 단 1개의 안타를 기록하는 최악의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두 선수는 2일 5차전에서 결국 사고를 쳤다.
SK가 0-3으로 뒤진 6회말. 넥센 선발 제이크 브리검이 엄청난 호투를 펼치고 있어 추가점은 쉽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SK의 4번 제이미 로맥이 3점 홈런을 치며 경기는 순식간에 동점이 됐다. 자세가 다소 무너진 채로 한손을 놓고 쳤는데도 타구는 엄청난 포물선을 그린 뒤 좌측 펜스를 넘어갔다. 로맥의 타구 각도는 무려 48도에 달했다.
넥센의 4번 박병호는 7-9로 뒤진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신재웅의 높은 공을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기며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타구를 응시하던 박병호는 곧 오른팔을 번쩍 들고 기사회생의 기쁨을 표현했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누군가는 한국시리즈로 향하고, 누군가는 이제 짐을 싸고 내년을 기약해야한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4번타자를 통해 야구의 묘미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