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대출(분양가 60%)은 받을 수 없고 특별공급도 사라졌다. 최소 10억 원의 현금은 갖고 있어야 도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몰렸다. ‘강남 로또’라 불리는 ‘서초 래미안리더스원’ 얘기다.
서초 래미안리더스원은 ‘9·13 대책’ 후 첫 강남 재건축 단지 분양인 데다 다음 달부터 개정된 청약 규칙이 적용되기 전 마지막 강남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보통 주말에 여는 견본주택을 평일인 31일 연 것도 사람들이 몰릴 것에 대비해서였다.
1일 견본주택이 있는 서울 송파구 삼성 래미안갤러리를 찾았다. 이틀째엔 혹시나 사람이 덜 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기대는 어김없이 빗나갔다. 문을 여는 오전 10시에 맞춰 들어갔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대기실로 사용하는 강당을 채웠다.
20~30명씩 짜인 그룹은 순서대로 3층의 청약 접수창구로 들어갔다. 30여 분의 기다림을 끝내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3층에 들어서자 앞서 들어간 사람들로 이미 북새통이었다. 견본주택을 구경하는 사람보다 청약 상담접수 창구 앞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뽑아 든 번호표의 대기 순번은 벌써 90번을 넘었다.
분양 대행 관계자는 “대강당에서 30, 40분 정도 대기한 뒤 3층에 갈 수 있다”면서 “3층 청약 상담도 대기자가 보통 80~120명 정도 돼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 창구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혹시나 해서 왔는데… 정부가 강남에선 돈 있는 사람들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결혼 3년 차, 남편과 맞벌이를 한다는 김정민(34) 씨의 얼굴엔 절망감이 가득했다. 김 씨는 회사 반일 휴가를 써서 이날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상담을 받은 김 씨는 분양가가 높은 강남구 아파트들은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없고 집단대출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강남은 포기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2시간 만에 상담을 끝낸 기자도 김 씨와 같은 결론이었다.
왜 몰릴까
서초 래미안리더스원에 이렇게나 사람이 몰린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청약규칙 개정 전 로또 분양 막차를 타기 위해서다. 다음 달 말쯤 시행될 새 청약규칙은 무주택자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하는 게 골자다. 아파트 중대형 물량의 75%가 무주택자 가점제로 공급된다. 나머지 25% 추첨제 물량도 절반이 무주택자 몫이다.
이번에 분양하는 서초 래미안리더스원은 기존 청약 제도가 적용돼 중대형 물량 50%가 추첨제로 배정된다.
“1주택자라 청약 규칙 바뀌면 당첨 확률이 낮아진다고 하니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 될 것 같았어요. 퇴직금도 중간 정산하고 친척들한테 빌려서라도 자금을 마련할 겁니다. 퇴직하기 전에 목돈을 마련할 유일한 기회기 때문이죠.”
50대 중반이라는 이 중년 남성은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견본주택을 찾은 이유는 명쾌하게 설명했다.
실제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서초 래미안리더스원 견본주택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 단지는 지하 3층~지상 35층, 12개 동, 총 1317가구 규모다. 이 중 일반분양 물량은 232가구다. 전용면적 별로는 59㎡ 4세대, 74㎡ 7세대, 83~84㎡ 185세대, 114㎡ 29세대, 135~238㎡ 7세대 등이다. 특별분양 물량은 없다.
공급물량이 가장 많은 전용 84㎡의 경우 총분양가는 15억7000만~17억3000만 원 선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 단지 인근에 위치한 래미안 서초에스티지에스 전용 84㎡는 지난 8월 말 20억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비용 부담이 있지만 주변 시세보다 4억~5억 원 낮아 입주 후에는 상당한 차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수저들만의 청약 로또
서초 래미안리더스원은 김 씨처럼 ‘강남 주택 구매’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상실감의 상징이 될 듯하다.
일단 집단대출을 받을 수 없다. 분양가 9억 원을 넘으면 집단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야 한다. 여기에 지난 5월 핸디캡 하나가 더 추가됐다. 특별공급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상반기 최대어로 꼽혔던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특별분양이 금수저 논란을 일으키면서 9억 원 넘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특별공급 자체를 없앴다. 다자녀 가구나 신혼부부 등에게 별도로 제공하는 특별공급 물량이 사라진 것이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신설된 제47조의 2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에서 공급되는 주택으로 분양가격이 9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특별공급할 수 없다.
이러다 보니 분양가 통제가 ‘금수저들만의 청약 로또’를 만드는 역설적 상황을 낳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남 재건축 단지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수준임에도 일반 무주택자가 접근하기는 어려운 가격이라는 점 때문이다. 서초 래미안리더스원은 강남에서 분양한 단지 중 가장 높은 가격이다.
3.3㎡당 평균 4489만 원으로 가장 작은 평형인 전용 59㎡ 분양가도 12억 원을 훌쩍 넘는다. 물량이 가장 많은 84㎡ 분양가도 15억7000만~17억3000만 원이고 238㎡ 펜트하우스는 39억 원에 달한다.
집단대출을 할 수 없으니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고려하면 분양가의 70~80%에 해당하는 현금이 필요하다. 적어도 10억여 원의 내 돈이 있어야 한다. 특별공급이란 혜택마저 사라졌으니 일반 서민과 중산층 무주택자들은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다.
현장에선 상담자들에게 솔깃할 만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일정 정도 중도금을 내면 계약 해지를 유예해주는 특약이 있을 것이란 얘기다.
디에이치자이 개포 분양 때도 중도금 2회분 정도 내면 계약이 해지되지 않아 나중에 전세를 들여 집을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그런 특약은 없다”고 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