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조명균’…5년째 계류 중인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사건

입력 2018-11-02 15:13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5년째 ‘피고인’ 신분이다. 2007년 10·4 선언이 나온 2차 남북정상회담의 회의록 폐기 의혹 사건으로 2013년 기소됐지만 이후 5년이 지나도록 최종 판결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통일부 장관이자, 남북 고위급회담 수석대표로서 남북관계 개선 작업의 실무책임을 맡고 있지만, 형사 절차적 문제에서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셈이다. 1·2심 재판에서는 무죄가 나왔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2013년 11월 조 장관과 상관인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지 않고 고의 삭제했다는 게 주요 혐의 내용이었다.

조 장관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으로 있던 2007년 10월 2~4일 평양에서 개최된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을 수행했다. 그는 회담장에서 노 전 대통령 뒤편에 별도로 마련된 책상에 앉아 회담 내용을 녹음하고 수기로 메모하는 일을 맡았다. 정상회담 종료 후에는 녹음파일을 풀어 회의록을 작성 및 보고하는 일을 했다.

회의록은 청와대 결재 라인과 노 전 대통령, 국가정보원을 수차례 오가며 수정·보완됐으며, 2008년 1월 ‘1급 비밀’ 형태로 국정원에 보내졌다. 청와대 정책관리 시스템인 ‘e지원’에 등재됐던 회의록 파일은 삭제됐다. 이를 수사한 검찰은 “회의록 무단 파기”라는 결론을 내렸고,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사초(史草) 폐기 행위”라고 몰아붙였다.

2015년 2월 1심 법원은 조 장관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회의록 파일은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고, 정당한 권한에 따른 폐기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9개월 뒤의 2심 역시 같은 취지로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검찰이 상소하면서 사건은 2015년 12월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대법원은 ‘사실심’인 1·2심과 달리 ‘법률심’이기 때문에 통상 공개변론 없이 내부 법리 검토로 진행된다. 재판부가 선고 기일을 정해 통보할 때까지 심리가 끝났는지 외부에서는 알기 어려운 구조다.

대법원은 이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해 지난해 12월 ‘쟁점 관련 법리 심층 검토 중’이라고 사건검색 사이트에 밝힌 이후 추가적인 정보를 올리지 않고 있다. 조 장관이 재판에 넘겨진 지 5년,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3년이 지나도록 계속 ‘계류 중’ 상태인 것이다. 조 장관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통일부 장관에 올라 ‘피고인’ 딱지를 깔끔하게 떼지 못한 채 남북 정상회담 준비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31일 제출한 조 장관의 해임건의안은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해임건의안은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돼야 하며, 표결이 안 되면 자동 폐기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일 본회의에 보고한 만큼 주말·휴일인 3~4일을 빼면 2일 표결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난색을 표해 2일 본회의 소집이 되지 못했다.

조 장관은 이날 민주당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2019 예산안 심사 및 민생입법 대비 원내대표단 및 상임위원장·간사단 워크숍'에 참석했다. 한국당은 조 장관 해임건의안을 조만간 다시 발의한다는 방침이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