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에 복수’ 영화 준비하던 제작자가 대포폰 공급자로 전락…왜?

입력 2018-11-01 11:54 수정 2018-11-01 13:49

보이스피싱 조직에 복수하는 주제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제작자가 오히려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폰을 공급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사기 및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총책인 영화제작자 강모(44)씨 등 4명을 구속하고 박모(33)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또 이들에게 유령법인 명의를 제공한 채모(57)씨 등 12명을 공정증서원본 등 부실기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강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유령법인을 무려 33개나 만들어 그 명의로 860여개의 대포폰을 중국 내 전화금융사기 범죄(보이스피싱) 조직에 공급하고 10억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4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 강씨는 지난 2012년 보이스피싱 조직에 복수하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면서 중국 내 보이스피싱 7개 조직의 조직원들과 접촉했다.

강씨는 2016년 이들 조직 가운데 한 조직의 조직원에게 “콜센터에서 사용할 전화기(일명 ‘키폰’)를 개통해 중국으로 보내주면 대당 250만원~400만원에 매입하겠다”는 제안해 넘어가기 전까지는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전화 접촉은 물론 중국까지 수차례 건너가 조직원들을 만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경찰조사에서 “조직원들과 전화 또는 만남을 하면서 ‘이게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범행을 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영화사 직원 이모(35·구속)씨와 오랜 지인들을 범행에 끌어들이는 한편 유사 범죄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박씨를 영입했다.

강씨 등 이들은 콜센터 상담원, 상담팀장, 현장실장 등으로 업무를 분담해 금융기관을 사칭한 대출광고문자를 발송하고 대출희망자들의 전화가 들어오면 상담을 가장해 인적사항, 연락처, 주소·거주지 등을 파악했다.

이어 대출희망자들과 접촉하면서 ‘070’ 인터넷 전화를 개통해 ‘대출해주겠다’며 유령법인을 설립해 전화기를 개통하는 수법을 동원했다.

대출을 받을 줄 알고 개인정보를 넘겨준 채씨 등 12명은 대출은 커녕 형사처벌은 물론 배상책임까지 질 처지에 놓였다.

범행 과정에서 강씨 등은 경찰 추적을 피하려고 2∼3주 주기로 대포폰을 바꿔 사용했으며, 조직원이 검거되면 즉시 핸드폰을 교체했다.

이들이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달한 전화번호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135명이 10억원 상당의 사기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원 간에도 이실장, 정부장 등 철저히 가명을 사용해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는 치밀함을 보였다”며 “시나리오 같은 현실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