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직 판사 ‘검찰 압수수색 위법했는지 따져보자’…법원 반발 움직임에 제동

입력 2018-10-31 16:43 수정 2018-10-31 16:47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조사를 위해 확인했던 문건 전부를 공개하기로 한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18.07.31.

현직 부장판사가 ‘사법농단 의혹’ 수사 중인 검찰의 압수수색이 위법했다고 주장한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상대로 31일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공개 요구했다. 사실관계 확인에 따라 위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취지다. 이 현직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 법원행정처의 ‘사찰’을 당했던 인사다. 일부 판사들이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구속 이후 공개적으로 검찰 수사 ‘흠집내기’에 나서자 이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박노수 전주지법 남원지원장은 지난 30일과 31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위법하게 집행됐다는 김 부장판사에게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수색의 대상 내지 범위’가 대법원 전체 이메일 백업 데이터였느냐”면서 “만약 전체 백업 데이터였을 경우 유효한 영장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를 없애고 법원 가족들의 정확한 이해와 판단을 공유하기 위해 빠른 설명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박 부장판사는 “답변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 취지와 이유라도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검찰 수사의 위법 여부를 가리기 위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히라는 얘기다.

앞서 김 부장판사는 30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검찰이 피의 사실과 무관한 이메일까지 별건 압수했다”고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5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조작’ 사건의 파기환송심을 맡았다. 검찰은 당시 행정처의 재판 개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김 부장판사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절차상 위법 행위가 있었다는 게 김 부장판사의 주장이다. 검찰은 “적법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맞섰다.

박 부장판사가 김 부장판사를 상대로 공개 확인을 요구한 것은 일부 판사들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현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특히 임 전 차장이 검찰에 구속된 뒤 비판 경향은 더 심해졌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최인석 울산지법원장은 임 전 차장 구속 이틀 뒤인 지난 29일 내부통신망에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청구는 홍수를 이루고 있다”며 “법원은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 산하 행정처의 사찰 피해자였던 박 부장판사가 검찰 수사에 반발하는 내부 분위기에 제동을 걸기 위해 내부망에 글을 올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 부장판사를 시작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법원 내부 갈등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행정처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박 부장판사를 떨어트리기 위해 다른 판사를 지원하려는 계획이 담긴 문건을 작성한 적이 있다.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작성된 이 문건에는 “(박 부장판사가 당선될 경우) ‘판사회의 중심의 수평적 사법행정 구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적시돼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