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어올 곳 없어 주식만 봤는데… 주부 A씨는 절망했다

입력 2018-10-31 16:43

경기도 용인에 사는 주부 A씨(41)는 요즘 사는 낙이 없다. 송파구에 사는 대학 동창과 통화할 때면 울화통이 치민다. 10년 전 A씨와 친구는 중계동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이후 A씨는 용인, 친구는 송파구로 이사를 갔다. A씨를 분노케 한 것은 아파트 값이다. 지난해부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강남4구 중 하나인 송파구 아파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하지만 A씨의 아파트 가격은 큰 변화가 없었다.

최근엔 분통을 터뜨릴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초등학교 3학년 큰 딸의 친구 어머니들과 반찬값이나 벌자며 지난해부터 투자한 주식이 곤두박질을 쳤다.

투자한 금액 중 30%나 손해를 봤다. 주로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된 주식들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하루 종일 증권 방송을 보는 게 일상이 됐다.

소비자 물가, 고용동향 등 각종 경제 지표가 암울한 상황에서 서민들의 유일한 자산 증식 기회였던 부동산과 주식마저 시장 침체를 걷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31일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동산은 강력한 규제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됐다고 판단해 학부형들끼리 반찬값이라도 벌자며 소액의 주식을 샀다”면서 “작년까지 주식 시장이 괜찮아 수익을 보니 욕심이 생겨 투자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올 초부터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서 증권 방송에서 남북 경협주를 추천했고 그걸 샀다”면서 “그런데 남북 경협은 진전이 안 되고 있고 미·중 무역 갈등 등 대외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주식시장은 2000선까지 붕괴됐고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주식시장에 가슴앓이를 하던 A씨의 가슴에 기름을 부은 건 대학 동창이었다.

A씨는 “친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파트 가격이 하락할 때 송파구 아파트를 샀다. 그게 지금 10억원 가까이 올랐다”면서 “그때 나도 송파구로 이사를 갔다면 지금처럼 마음 고생하는 일은 없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직장인 B씨(39)는 초등학생 아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B씨는 “지난 주말 아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거기서 만난 학교 친구와 인사를 하길래 ‘친하냐’고 물었다”면서 “그랬더니 아들이 ‘쟤는 엘거라 안 친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엘거는 LH가 지은 아파트와 거지를 합한 말이다. 비슷한 신조어로 임대아파트 브랜드 ‘휴ooo'이나 빌라와 합성한 휴거, 빌거도 있다. 브랜드가 있는 아파트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점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계급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사실 5년 전 이 집을 살 때도 아이들 때문에 아파트 크기를 고민했다. 친구들끼리집 크기로 구분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아파트 브랜드까지 구분하는 세상이 됐다. 세상이 각박해 지는 것 같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