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공동조사단)’ 조사에서 한 피해자가 한 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생, 주부 등 일반 시민이 총으로 위협하는 여러 군인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피해자 대다수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공동조사단은 31일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가운데 중복 사례를 제외하고 17건, 연행·구금된 피해자와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성고문 등 여성인권침해행위 43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5·18 때 벌어진 성폭력 사건이 정부 차원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5월 5·18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의 증언이 나온 후 6월에 출범했다. 이들은 10월 말까지 ▲피해 접수·면담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자료 검토 ▲5·18 관련 자료 분석 등의 방법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성폭행 피해는 시민군이 조직화되기 전인 5월 19일~21일 사이에 몰려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초반에는 광주 시내인 금남로, 장동, 황금동 등에서, 중후반에는 광주 외곽지역인 광주 교도소, 상무대 인근에서 발생했다.
피해자 나이는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했다. 직업은 학생, 주부, 생업종사자 등이다.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성추행한 경우도 여러 건 확인됐다. 이 중에는 임산부 피해자도 있었다.
연행·구금된 여성 피해자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성고문 등에 노출되기도 했다. 속옷 차림의 여성을 대검으로 희롱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여성의 유방과 성기에 뾰족한 물건으로 생긴 상처가 있었다는 기록도 나왔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피해자 대다수가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들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며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기억 속에 갇혀 트라우마로 고통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한 피해자는 조사 과정에서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성폭행당한 것이 잊히지 않는다”고 증언했고, 다른 피해자는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춰버렸다”고 호소했다.
공동조사단은 이번 조사결과를 출범 예정인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원회)’에 이관할 방침이다. 공동조사단이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당시 발생한 성폭력 전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힌 만큼 조사위원회 측에서 더 자세한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원회 출범 전까지는 광주광역시 통합신고센터에서 피해사례를 접수한다. 피해자 면담조사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여성가족부는 피해자 심리치료를 지원한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