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이 남과 북의 평화를 앞당기는데 기여하다니, 30년 만에 소원을 이뤘어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그의 조각 작품 2점을 선물한 사실이 전파를 타면서 최종태(86) 조각가는 요즘 핫한 인물이 됐다. 서울 종로구 평창 30길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영원의 갈망’전이 열리는 와중에 그런 ‘경사’가 터졌다.
지난 29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만나는 사람마다 전시보다 그 얘기가 먼저”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인터뷰를 하며 교황 선물로 낙점된 소감을 물었더니 1988년 출간된 작품집 ‘최종태’(열화당)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 작품집 첫 머리에 ‘내가 평화를 위해 기여한 바가 없다’고 썼었다”고 회고하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이는 최종태의 인물 조각이 지향해온 바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일화로 들렸다. 그에게 ‘교회 조각의 대가’라는 헌사가 돌아간 것은 이런 염원이 바탕에 깔려서 일 것이다.
개인전에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던 대규모 회고전 이후 제작된 신작이 대거 나왔다. 성모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여인 조각상 뿐 아니라 지난해 병원 입원을 계기로 시도한 싸인펜 회화 등 회화 작품도 볼 수 있다.
과거부터 해오던 이집트 조각을 연상시키는 반추상 여인 브론즈 조각도 전시됐다. 측면은 추상, 정면은 사람인 이 조각에선 이집트 조각이 갖는 영원성이 느껴진다. 최근 2년 사이에 탄생한 조각들은 나무를 재료로 하면서 볼륨감이 있어지고 형체도 구상성이 강화된 게 특징이다.
그가 작가로서 출발을 내디뎠던 196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에서는 추상 조각이 주를 이루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인물 조각에 천착해 왔다. 그것도 주로 여인이었다. 자신의 신앙이 투영된 그 인물들은 성모상을 연상시켜 ‘성상 조각가’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그 도상이 파격적이다. 얼굴은 대체로 보름달처럼 둥글거나 혹은 반달 모양이다. 그 자체로 꾸밈이 없는데, 거기에 눈과 코가 무심한 듯 표시돼 고졸한 맛을 풍기기까지 한다. 아이를 앞으로 업은 듯한 성모자상은 위트가 있다.
“얼굴을 그리면 늘 이렇게 동그랗게 나와요.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고, 거기에 인간의 정신까지 담고 싶거든요. 그건 깨끗하고 순박한 얼굴이지. 그걸 끝까지 밀어붙여 거룩한 얼굴로까지 가고 싶어요. ”
그는 나무 조각을 할 때도 채색을 한다. 전통적인 곡두 인형을 연상시킨다. 처음엔 나무 재료가 좋지 않아 흠을 숨기려고 색칠을 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채색이 주는 토속미에 빠져 일부러 색을 칠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는 처음 시도한 ‘황토 여인 조각’ ‘백토 여인 조각’이 나왔다. 나무 조각에 황토나 백토를 바른 것이니 채색의 연장이다. 동그란 얼굴에 단순한 몸통을 한 황토 여인상은 삼국시대 토용을 보는 듯한 기분을 준다.
이렇듯 그의 조각은 추상과 구상,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든다. 종교를 가로지른다. 성모상인데도 반가사유상의 팔을 괸 동작을 차용하기도 했던 그가 아닌가.
개막식 날 제자의 전시를 둘러 본 ‘102세 현역 작가 신화’를 쓰고 있는 김병기 화백은 “최종태의 조각은 한국 사람의 얼굴이야”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김 화백은 비평가로도 활발히 활동했었다.
“우리 선배세대 조각가들은 식민지 시대를 겪었어요. 조각가로 살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 미술전람회 당선작들을 연구했어요. 일제가 우리나라 정신의 맥을 끊어놨더라고. ‘일본물’을 거기다 넣은 것이야. 나는 그걸 보고 40년을 뛰어넘으려고 한 거요. 그걸 뛰어넘어 조선 시대의, 고려 시대의, 삼국 시대의 맥을 이으려고 한 거지요. 그걸 김병기 선생이 제대로 본 거야.”
한국적 얼굴을 보여주는 그의 조각 전시는 11월 4일까지 열린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