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M은 사행성을 조장한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화두로 떠오른 주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난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 출석했다. 문체위 소속 의원들은 하나같이 ‘리니지M은 도박’이라는 전제로 김 대표를 몰아세웠다. 한 의원은 리니지M을 로또에 비유했다. 뽑기 확률이 거의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그 외에도 “확률형 아이템으로 벌어들인 돈이 얼마인가” “폐해가 유저에게 돌아간다면 규제해야 되지 않느냐” “청소년이 자신도 모르게 사행성에 빠지고 있다”는 등 적나라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말뜻으로 ‘게임’이냐 ‘도박’이냐를 따지자면 리니지M은 게임이다. 도박은 금품을 걸어 더 큰 금품을 노리는 노름 행위다. 확률형 아이템은 실물을 얻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박으로 규정짓기 어렵다.
그러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리니지M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곡소리다. 리니지M은 ‘pay to win(돈을 써야지만 이기거나 이길 가능성이 높아짐)’이 과하다는 보편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용자들의 씀씀이도 그만큼 과감하다. 정도가 심하기에 때론 도박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게임을 빙자한 유사 도박’ ‘강원랜드도 울고 간다’ ‘도박 사업을 하는데 규제가 없다’는 리니지M 이용자들의 원색적 비난을 게임 커뮤니티나 뉴스 댓글을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도박’과 ‘확률형 아이템’은 극악의 확률 속에서 일확천금을 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 1만원 투자로 시작한 도박이 100만원이 되고 1000만원이 된다. 이 같은 사행심은 심리적 조급함과 엮여 개인과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된다. 일시적 오락을 벗어난 도박은 형법상 범죄에 해당한다. 리니지M의 경우 돈을 보상으로 얻진 않지만 극악의 확률에 큰돈을 들인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도박과 유사하다.
이날 국감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리니지M 게임 이용자 중 10%만이 ‘과금 유저’다. 그런데 이들이 쓰는 돈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리니지M에서 이용자들은 소수만 가지고 있는, 혹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희귀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전투적으로 투자한다. 얻을 확률이 극히 낮다는 사실을 알고도 말이다.
도박은 자발적인 행동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돈을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돈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도 악에 받쳐 반복적으로 행동한다. 게임 내 희귀 아이템은 고가의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희귀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돈을 쏟다가 끝내 안 나와서 좌절하는 이용자의 하소연은 뉴스와 공중파 방송에서 게임의 부정적 단면을 나타내는 단골 메뉴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리니지M 출시 후 엔씨소프트는 사상 최고 매출액을 달성했다. 국감에서 손혜원 의원은 “리니지M이 1년 만에 1조원의 놀라운 결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리니지M 출시 당시 하루 벌어들인 수익이 100억원에 달한다는 자료도 있다. ‘리니지M 효과’를 등에 업은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3분기 매출 7273억원, 영업이익 3278억원, 당기순이익 2751억원의 역대 최고 성적표를 냈다. 전년 동기대비 당기순이익이 474% 증가한 미증유의 성과다.
‘게임’ 하면 미션을 완수하거나 스토리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리니지M의 핵심 콘텐츠는 ‘뽑기’다. 더 많이, 더 잘 뽑아야 강해진다. 게임 방송을 진행하는 상당수 방송자키(BJ) 역시 주된 콘텐츠를 뽑기에서 찾는다. 뽑지 않으면 게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방식이 게임 산업 발전에 유익한가라는 질문은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 또는 국회 토론회에서 공공연하게 다뤄지고 있다. ‘갓챠(gotcha)’, 곧 확률형 아이템에 몰두하는 콘텐츠가 큰돈을 벌어들인다는 인식이 만연해지면 게임사들이 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노력을 경시할 우려가 있다. 좋은 게임보다 돈 잘 버는 게임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게임 시장의 최근 흐름을 살펴보면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모바일 게임이 쏟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리니지M에 불법 요소가 있는 건 아니다. 잘 정비되지 않은 현행법의 탓도 크다. 과도한 과금에서 출발한 결제 한도는 아직 PC 게임에 한정돼 있다. 김 대표가 지적했듯 모바일 게임 결제는 앱 스토어 등에서 이뤄진다. 게임사 손밖의 일이다.
국감에서는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발언들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청소년 보호에만 몰두한 것은 마냥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해선 좀 더 넓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게임은 유망한 콘텐츠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게임 산업이 나아가야 할 가이드라인은 어쨌든 대형 게임사들이 제시해야 한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