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는 ‘민속놀이’로 불릴 만큼 오랜 시간 사랑받은 게임이다. 올 초에는 출시 20주년 행사를 열었다. e스포츠로서의 역사 또한 유구하다. 28일 아프리카TV 스타리그(ASL) 시즌6 결승은 무려 8년 만의 리턴 매치였다. 김정우(저그)와 이영호(테란)가 2010년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1 결승에 이어 다시 한번 우승 트로피를 두고 맞붙었다.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펼쳐진 재대결은 김정우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 김정우는 2, 3세트를 내리 내주며 궁지에 몰렸지만, 4세트와 5세트를 연이어 따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패패승승승’ 역전 드라마를 썼던 2010년과 여러모로 닮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모든 게 같지는 않았다. 심리 싸움은 8년의 세월 동안 더욱 치밀해졌고, 교활해졌다.
이날 결승전은 치열한 심리전과 수 싸움의 연속이었다. 두 선수 모두 베테랑다웠다. 가령 5세트는 첫 세트와 전장이 같아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이 펼쳐졌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정우는 “마지막 경기는 첫 세트와 맵이 같다 보니 영호와 심리전이 있었다. 영호가 의식할 거로 알고 (전략을) 조금 꽜다”며 “제가 수 싸움에서 이겼던 것 같다”고 복기했다.
김정우는 이날 아우토반전에 맞춰 버로우 저글링을 준비해왔다. 김성현과의 4강전에서 썼던 전략이기도 했다. 김정우는 “1세트는 상황이 나오지 않아 버로우를 못 보여드렸다”며 “후에 영호가 1세트 리플레이를 보고 버로우에 대해 말하더라, 그 말을 안 했으면 (5세트에) 썼을 텐데 말을 해서 다르게 해봤다”고 털어놨다. 이영호의 말 한마디에 게임 판도가 바뀐 것이다.
또 김정우는 4세트에 투 해처리 디파일러 러시로 귀중한 승점을 따냈다. 김정우는 이 전략과 관련해 “즉흥 전략이 아니었다. 오늘 4세트에 맞춰 준비해온 전략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무난하게 가면 저그가 힘든 전장이다. 변수 없으면 힘들 것으로 생각해 준비했다”며 “영호가 당황하는 바람에 쉽게 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 김정우는 본격적인 결승 경기 시작에 앞서 이영호와 가벼운 설전을 벌였다. 이영호가 “3대0 승리를 생각하고 왔다”고 호언장담하자 김정우도 “저도 3대0으로 이길 생각으로 왔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한 수 더 나아가 “4, 5세트는 준비 안 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구보다 꼼꼼하게 전략을 준비해온 김정우였다.
8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꿨다. 한국이 자랑하는 최종병기는 여전히 강력했지만, 습기처럼 스며든 세월로부터 부식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지속적으로 팔 통증을 호소해온 이영호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차기 시즌 불참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불사조의 발톱 또한 마모가 가속되고 있다. 김정우는 ASL 시즌6 우승 후 “팔 통증을 참아내면서 이번 시즌을 치렀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도 (통증이) 영호만큼은 아니다. 될 수 있는 데까진 대회에 참가하고, 개인 방송도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010년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1 당시보다 손은 느려졌다. 순간 판단력도 떨어졌다. 그러나 8년의 수라장에서 새로이 터득한 것도 있었다. 더욱 교묘해진 심리전과 노련해진 경기 운영 능력이었다. 팬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줬다. 연세대학교 대강당을 찾은 1500여 명의 스타크래프트 팬들이 이날 결승을 “최고의 명승부”라 극찬한 이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