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법농단 의혹’ 핵심 임종헌 측, 영장심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비판

입력 2018-10-26 20:12
'사법농단 의혹'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8.10.26.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26일 이뤄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사법부 70주년 기념사’ 내용을 정면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당시 ‘사법농단’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임 전 차장 측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각종 사법농단 의혹들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문 대통령의 기념사를 문제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전 차장 측의 주장은 현직 대통령이 법적 판단을 받기 전의 의혹들에 대해 ‘농단’이라는 부정적 표현을 쓴 것은 잘못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직권남용 혐의가 정치보복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지난 정부 수장들에 대해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임 전 차장 또한 광범위한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다.

다만 임 전 차장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임 전 차장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 등에서 당시 청와대와 긴밀하게 교감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와 정보를 교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법원 내부에서도 나왔다.

검찰 수사에서도 임 전 차장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재판, ‘세월호 7시간’ 사건 재판 등 각종 ‘박근혜 청와대’ 관심 사건 처리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와 긴밀하게 교감한 정황들이 여럿 확보됐다. 특히 임 전 차장은 세월호 7시간 사건 재판 선고 직전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선고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으며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의 기사가 허위 사실임을 판결에 밝히라”는 지시를 임성근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를 통해 해당 재판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런 행위를 ‘농단’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직권남용에 대해서도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세월호 7시간 사건 1심 재판장이었던 이동근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임성근 부장판사의 말을 그대로 듣고 판결문을 썼다면 판사 자격이 없다’는 취지로 비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임 전 차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와 교감을 했지 이 부장판사에게 직접 지시를 한 적은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차장의 영장실질심사는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4시20분까지 진행됐다. 20분 가량의 휴정 시간을 빼면 5시간30분이나 진행된 셈이다. 검찰 측과 임 전 차장 측이 다투는 범죄 사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된 죄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비밀누설 등 6가지 이상인 데다가, 범죄 사실만 해도 재판 개입 및 법관 사찰 등 수십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는 230쪽이 넘는다고 한다.

임민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양측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심리를 거쳐 이르면 이날 밤 구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임 전 차장은 이날 오전 10시12분쯤 법원에 도착한 뒤 곧바로 심사가 진행될 법정으로 들어갔다. 그는 심경과 혐의 인정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심사가 끝나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갈 때도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