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오를 땐 못 오르고, 떨어질 땐 더 떨어지는 코스피

입력 2018-10-27 05:00
코스피지수가 1.75% 급락한 26일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코스피지수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거래소 제공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공세에 코스피가 ‘최악의 10월’을 보내고 있다. 기록적인 주가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증시가 반등할만한 요인도 쉽게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증시 자체가 부진한 상황이지만 한국 증시의 낙폭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SK증권 하인환 연구원은 26일 “다른 국가 증시가 오를 때는 못 따라가고, 떨어질 때는 함께 떨어지거나 더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문제는 국내 증시가 더 떨어지는 현상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주식을 고점에서 물린 개인투자자들의 원성도 커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26일 1.75% 하락한 2027.15로 마감했다. 교보증권 김형렬 리서치센터장은 26일 “외국인들이 기계적으로 매도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지수 급락에도 불구하고, 주식이 싸다는 걸 투자 주체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고, 매수세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외국인은 최근 1개월간 코스피에서 3조7700억여원을 순매도했다.

코스피의 급락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긴축의 가속화가 주요 원인이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서 위험자산인 주식의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도 글로벌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 경제가 기업 투자 부진, 고용 부진, 내수 부진 등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도 별다른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년 동기대비 성장률은 2.0%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9년 만에 가장 낮다. SK증권 안영진 연구원은 “오는 4분기 및 내년 이후 성장 동력 확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대내외 악재들을 감안해도 한국 증시의 낙폭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0.19%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0.4% 하락했다. 아시아 증시가 전반적으로 하락하긴 했지만 코스피처럼 급락하진 않았다. 이런 현상은 이날 하루에만 나타난 게 아니라 이달 초부터 지속되고 있다. 하인환 연구원은 “이달 들어 미국, 중국 증시가 급등했을 때도 한국 증시 상승은 1% 전후로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은 중·장기간의 지수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다우지수는 최근의 급락을 반영하더라도 2013년 11월부터 최근 5년간 약 60% 상승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5년간 약 49% 올랐다. 반면 코스피는 5년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0.5% 하락한 상황이다.

코스피가 2012~2016년 박스피 구간인 1800~2200선에 다시 갇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하나금융투자 김용구 연구원은 “한국 증시에 기록적인 급락세가 지속되면서 코스피는 2017년 이후 이어졌던 상승분을 모조리 반납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6일 국회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한국 증시의 저평가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왜 유독 한국시장만 저평가받을 수밖에 없는지 금융당국에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이번 주식 하락기를 맞아서 금융당국이 이런 부분을 수시로 논의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근의 주가 급락과 관련한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6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한국 시장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 금융위기 징후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설명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주가 하락 대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수십 건 제기된 상태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