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민자 행렬(Caravan·캐러밴)을 차단하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기로 했지만 캐러밴은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민자들이 국경 밀수업자(Coyote·코요테)에게 큰돈을 건네고도 폭력과 살인 등의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을 해결하지 않는 한 캐러밴 행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멕시코 국경에 군대 800~1000명을 배치하는 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AP통신이 이날 전했다. 미국은 앞서 캐러밴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중남미 3국에 배정된 지원금 2억6000만 달러(약 2950억원)를 삭감하기로 했다.
미국이 더 단단하게 국경을 닫아걸고 있지만 캐러밴 행렬은 미국 국경을 향해 계속 움직이고 있다.
온두라스 청년 호세 디아(20)는 영국 인디펜던트지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행진을 계속하겠다”며 “국경을 넘어 망명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 출신이다.
WP는 캐러밴 행렬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위험한 ‘인신매매 경로’를 피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을 넘는 일에 깊게 개입한 국경 밀수업자들 때문이다. 미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국경밀수업자들은 2008년 이민자들을 몰래 밀입국시켜주고 2000 달러(약 230만원)를 받아 챙겼다. 하지만 이들에게 건네는 비용은 10년 사이 5배 가까이 불어 2018년에는 9200 달러(약 1050만원)에 달했다. 가난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는 이민자들에게는 너무 큰 액수다.
이 때문에 전 재산을 팔아 모은 돈을 고스란히 국경 밀수업자들에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그보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국경 밀수업자들에게 돈을 건넨다. 물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추방당하면 살길이 막막해진다. 국경밀수업자의 도움을 받아 마이애미에 정착한 에빈 마타는 “9200 달러는 언젠가 다시 추방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큰 돈”이라고 말했다.
이민자들은 국경 밀수업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에도 노출돼 있다. 국경 밀수업자 중에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 출신이 많다. 2008년 펠리페 칼데론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멕시코 북동부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에 나섰는데 이때 기반을 잃은 마약 카르텔 일부가 국경 밀수업에 손대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미국 이민길에 오른 이민자 72명이 멕시코 북동부 산 페르난도 마을에서 살해당했다. 마약 카르텔의 가입 권유를 거부한 게 원인이었다. 살해당한 이민자들 온두라스, 과테말라, 에콰도르 출신이었다. 현재 캐러밴에 합류한 이민자들의 국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 싱크탱크 이민정책연구소의 앤드류 샐리 소장은 “과거에는 (국경을 넘기 위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위험하지 않고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도 있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대규모 범죄행위에 의해 운영된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