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즈컨 드림’ 김성현-정윤종의 미묘했던 신경전

입력 2018-10-26 05:00

김성현(Last)과 정윤종(Rain)이 블리즈컨 무대에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매치를 벌인다. 이벤트전이지만 이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각별함이 있다. 최고의 무대 ‘블리즈컨’이기 때문이다. 경기를 앞두고 두 선수는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은근하게 드러냈다.

김성현과 정윤종은 다음 달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블리즈컨 2018에서 ‘KSL vs ASL’이란 타이틀로 5판 3선승 매치를 벌인다.

김성현과 정윤종은 각각 코리아 스타크래프트 리그(KSL)와 아프리카TV 스타리그(ASL) 우승자 자격으로 이번 매치에 ‘콜 업’됐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블리즈컨 정식 종목이 아니다. 이번 대결도 ‘이벤트전’으로 홍보되고 있다. 그러나 두 선수에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25일 블리자드 코리아 사무실에서 두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두 선수는 블리즈컨에 참가하는 소감을 밝혔다.


처음으로 블리즈컨 무대를 밟는 김성현은 “굉장히 설레고 기대된다. 해외에서 게임을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고 말했다. 정윤종은 지난 2015년 스타크래프트2로 블리즈컨 무대를 밟은 적이 있다. 3년 만에 다시 블리즈컨 무대에 서는 그는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다”면서 “이런 경기는 대부분 '택뱅리쌍'이 초청되는데, 이번에 가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밝혔다.

인터뷰의 시작은 가벼웠다. 두 선수는 “해외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 “재밌는 경기 하고 싶다”면서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질문이 하나둘 나오자 두 사람의 속내가 조금씩 드러났다. 그래도 ‘블리즈컨’이 아닌가. 두 사람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됐다.

정윤종이 “맵을 아직도 모른다”면서 먼저 심리전을 걸었다. 정말로 몰랐을까,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 걸까. 블리자드 관계자는 “통보가 다 된 거로 안다”고 했다. 김성현이 “이러면서 속으로는 이길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고 하자 정윤종은 멋쩍게 웃었다. 정말로 맵을 몰랐는지는 정윤종 본인만 안다.


맵 구성에 대한 신경전도 있었다. 이번 매치에서 선택된 맵은 글레디에이터, 서킷 브레이커, 제3세계, 스파클, 로드킬이다. KSL과 ASL 맵이 고르게 분배됐다. 양대 리그를 모두 소화 중인 두 선수에서 딱히 생소한 맵은 없다. 다만 지는 사람이 다음 세트 맵을 고르는 KSL 방식이 차용됐다.

김성현은 “맵을 본 순간 이번 대결은 즐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우는소리를 했다. 정윤종이 “저는 테란이 안 나쁜 것 같다”고 곧장 반박했다. 그는 “제가 보기엔 비슷비슷하다. 제3세계는 프로토스가 좋은데 스파클은 테란이 좋다”고 차근히 설명했다.

이번 매치는 승부는 5판 3선승제로 진행된다. 이벤트전이면 승부와 관계없이 5세트를 모두 치를 법 하지만 블리자드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두 선수에겐 좋은 자극이다.

이번엔 다시 정윤종이 시비를 걸었다. “이벤트전이니깐 평소 안 나왔던 전직 넥서스나 스카웃 같은 걸 할까 한다. 기꺼이 ‘당해 줄’ 의향이 있다”고 도발했다. 김성현이 “당해줄 의향이 있으면 쓸 의향도 있다”고 맞장구치자 “그거(전진 전략)를 하면 SCV를 빼앗아서 테테전(테란 대 테란전)을 하겠다”고 받아쳤다.

이쯤 되자 둘은 본심(?)을 드러냈다. 정윤종은 “둘 다 다양한 스타일의 전략을 쓸 줄 알지만, 태생이 운영 위주다. 몇 판은 전략적인 게 나올 수 있지만 결국 운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현도 솔직해졌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맵 자체가 초반에 끝나기보다 운영 위주다. 게임이 좀 길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진지 게임’의 의지를 내비쳤다.

갑자기 정윤종이 “이래놓고 전진게이트 할까 생각 중이다”면서 또 심리전을 걸었다. 김성현이 채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정윤종은 “어쨌든 접전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면서 웃었다.


김성현과 정윤종은 동갑내기 친구다. 팀은 달랐지만 오랜 시간 함께 달려왔기에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바가 있다. 동시에 서로의 실력을 잘 알고, 존중하는 사이다. 김성현은 “윤종이는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한다. 까다로운 플레이를 잘한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정윤종은 “성현이는 ‘기계’다. ‘알파고’라는 별명답다. 경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져야 하는데 성현이는 침착하다. 감정이 아예 없는 건지… 흔들리지 않는다. 가끔은 좀 답답하다. 너무 안 휘둘린다”면서 뚝심 있는 경기력을 칭찬했다.

끝으로 둘은 ‘블리즈컨 드림’을 향한 다부진 포부를 다졌다. 김성현은 “KSL 대표로서 좋은 경기 보여드리고 싶다. 특히 치고받는 재밌는 경기를 하고 싶다. 물론 이기는 게 좋다. 좋은 경기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정윤종은 “이벤트 경기지만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꼭 이기도록 연습 많이 하겠다.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외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를 많이 안 하는데, 외국 팬들에게 스타크래프트가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