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액 7000억원 파워볼 ‘꼴등’ 당첨됐다… 어떻게 수령하지?

입력 2018-10-25 17:24 수정 2018-10-26 11:23
미국 플로리다주 하이얼리어의 한 복권 판매소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파워볼이 판매되고 있다. AP뉴시스

경박한 주제를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횡재를 좇았던 이야기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 말하면 속물, 물질만능주의자로 취급되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꿈꾸고 때로는 시도하는 월급쟁이·자영업자의 오아시스. 하지만 곧 신기루라는 사실을 일깨워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숫자 6개의 냉정한 승부. 천문학적 당첨금이 누적된 미국의 로또 복권을 구입했다.

2조5000억원

한국 시간으로 지난 24일 낮 11시59분. 세계의 시선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WSB 방송국 스튜디오로 쏠렸다. 미국 복권 당첨금 사상 최고액인 16억 달러가 누적된 메가밀리언의 1등 당첨번호 추첨이 진행된 곳이다. 파워볼과 함께 미국 로또시장을 지탱하는 ‘양대 산맥’인 메가밀리언은 12개 주의 복권 연합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추첨과 중계방송을 ABC 계열 조지아주 방송사인 WSB에 위탁했다.

메가밀리언은 지난 7월 24일 캘리포니아주의 사무직 노동자 단체에 5억4300만 달러의 당첨금을 지급한 뒤 3개월 동안 1등 당첨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적중이 어려운 구조 탓이다. 1등 당첨 확률은 이론상 3억260만분의 1이다. 당첨금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820000000000원. 아라비아 숫자가 열세 개나 나열돼 일일이 세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쌓였다.

1등 당첨번호는 화이트볼 ‘5, 28, 62, 65, 70’번과 메가볼 ‘5번’으로 결정됐다. 이 번호를 찍은 사람이 있었다.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교육복권(The South Carolina Education Lottery)이 이 번호를 찍은 복권 1장을 주 내에서 확인했을 뿐이다. 메가밀리언을 추첨하는 시간은 미국 동부인 조지아주 시간으로 밤 11시였다. 당첨자는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됐다.

미국은 세계 최대 로또시장으로 평가된다. 당첨금 규모에서 메가밀리언·파워볼과 필적할 복권 브랜드는 유럽 12개국에서 유통되는 유로밀리언 정도뿐이다. 유로밀리언의 1등 당첨금은 최대 1억9000만 유로(약 2470억원)로 제한돼 있다. 이는 하루 전까지 메가밀리언에 누적됐던 당첨금의 15% 수준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1등 당첨자는 인류의 복권 당첨금 사상 최고액을 손에 넣은 셈이다.

파워볼은 메가밀리언에서 시작된 ‘로또 열풍’을 키웠다. 파워볼에서도 메가밀리언에 버금가는 6억3000만 달러(약 7170억원)의 당첨금이 25일 낮 11시58분까지 누적됐다. 메가밀리언과 합산한 누적 당첨금은 약 2조5000억원. 시중은행에 예치하면, 연이율을 1.5%로 어림잡아도 하루에 1억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파워볼은 낮 11시59분 정각에 시작된 추첨에서 화이트볼 ‘3, 21, 45, 53, 56’번과 레드볼 ‘22’번을 1등 당첨번호로 뽑았다. 이 번호를 찍은 1등 당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누적 당첨금은 이제 7억5000만 달러(약 8540억원)로 늘었다.

미국의 복권 구매 대행업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메가밀리언에 기입할 숫자를 클릭으로 입력할 수 있다. 상단 숫자 70개에서 번호 5개를 지정하고, 하단 숫자 25개에서 번호 1개를 찍으면 된다.

메가밀리언·파워볼 속는 셈 치고 사봤다

태평양 너머의 로또 열풍을 어떻게든 경험하고 싶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 구매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복권 판매소에 찾아가면 된다. 다만 네바다·유타·앨라배마·미시시피·알래스카·하와이주에서 메가밀리언·파워볼을 구입할 수 없다. 현장 구매는 당첨금을 수령하는 방법에서도 안전하다. 미국 연방정부는 복권 당첨금에 세금을 부과할 뿐 현장에서 구매한 당첨자의 국적을 따져 수령을 제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장 일손을 놓고 미국으로 건너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바쁜 워싱턴 특파원을 붙잡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지인이 개입된 1등 당첨 복권에서 어떤 말썽이 벌어지는지는 여러 민사의 판례가 보여준다. 적어도 복권 구입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절차나마 내 손을 거쳐야 했다. 방법은 있었다. 수수료를 받고 구매를 대신하는 복권 업체들이 미국에 많다. 결제 창구까지 갖춘 한국어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구매 대행업체를 포털 사이트 검색만으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 A업체를 선택해 메가밀리언·파워볼의 구매 대행을 신청했다. 이를 위해서는 두 번의 ‘찝찝한 관문’을 지나야 한다. 하나는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회원가입 절차, 다른 하나는 구매 비용을 업체로 송금하는 결제 과정이다. 회원가입에서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여권에 기재한 영문 이름과 같은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절차가 이뤄진다. 그 이상의 정보를 요구하는 업체는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 사업자로 등록된 업체에 주민등록번호처럼 중요한 정보를 넘겨주고 피해를 입어도 우리나라에서 보호를 받기 어렵다.

A업체의 경우 메가밀리언·파워볼 한 장당 3달러50센트에 판매했다. 메가밀리언과 파워볼의 원래 가격은 한 장당 2달러씩이다. A업체는 구매 대행 비용에 75%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다만 메가밀리언의 경우 엄청난 관심을 반영해 수수료를 할인했다. A업체에서 메가밀리언 3장을 7.8달러, 파워볼 3장을 10.5달러에 각각 구입했다. 엄밀히 말하면 구입이 아니다. 당첨금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실물 복권’은 A업체에 보관된다. A업체는 구입한 복권을 촬영하고, 그 사진을 이메일로 발송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메가밀리언은 ‘꽝’이었다. 단 하나의 숫자도 적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추첨한 파워볼에서 레드볼 1개는 적중했다. 야속한 화이트볼 5개는 빗나갔다. 파워볼은 화이트볼 1~69번 중 번호 5개를 선택한 뒤 별도의 레드볼 1~26번 중 번호 1개를 찍는 방식으로 당첨자를 결정한다. 파워볼은 이 레드볼로 인해 당첨 확률이 희박해지고 당첨금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한다. 레드볼 1개만 적중하면 9등, 즉 최하위다. 당첨금은 4달러로 4500원. 18달러30센트를 투자해 4달러를 벌었으니 적자율은 79%였다.

미국 시애틀 소재 구매 대행업체에서 보낸 파워볼의 실물 사진. 모든 번호가 빗나가고 레드볼 1개만 적중했다.

4500원

메가밀리언·파워볼 대행 구매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정작 당첨되도 돈을 어떻게 국내로 들여올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있다. 운영 경험을 가진 구매 대행업체들은 3등 이하의 당첨금을 예치금으로 환급한다. A업체는 파워볼 당첨금 4달러를 추첨 완료 3시간 뒤 예치금으로 입금했다. 이 돈은 홈페이지 기록으로 남고, 통장 계좌를 등록해 출금할 수 있다. 문제는 1·2등에 당첨했을 때다. 이 순위에 걸린 거액의 당첨금은 미국을 직접 방문해 찾아와야 한다. 대행업체 대부분은 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에서 거액의 당첨금을 손에 넣은 외국인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수 있다. 온갖 소송과 반발 여론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의 복권 당첨금 수령을 놓고 각 주마다 다른 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권을 구입한 시점에 미국 체류를 증명할 서류가 없으면 당첨금을 수령할 수 없는 주도 있다. 큰 주의가 필요하다.

다만 당첨금을 들고 한국 땅을 밟기만 하면 법적인 문제에서 다소 자유로워진다. 우리나라에서 대행업체를 통한 해외 복권 구입의 위법성·사행성에 대한 규정은 명확하게 수립되지 않았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복권·도박 등 사행사업에서 국내 업체만 관리감독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우리 법에 해외 복권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 메가밀리언·파워볼은 미국의 법만 적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행업체의 ‘먹튀’ 가능성도 걱정거리다. 메가밀리언·파워볼의 당첨금은 평생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금액. 대행업체 직원 중 누구라도 변심해 신분을 위조하고 당첨금을 수령해 사라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구매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해외 복권을 구매 대행할 때 SNS·커뮤니티에 올라온 후기를 꼼꼼히 살핀 뒤 상대적으로 많은 신뢰를 쌓은 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A업체 관계자는 “메가밀리언의 경우 복권에 이름(영문) 서명을 적는다. 여권에 기재된 영문 이름과 동일해야 1등 당첨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행업체 직원이 신분을 위조하지 않는 한 1등 당첨금을 빼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1등 당첨이 확정되면 곧바로 변호사·세무사를 채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철오 강문정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