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금 빼돌린 사립유치원, 불법 지입차 운행까지 일삼아…영세 지입차주들에게는 쥐꼬리 금액 지급

입력 2018-10-24 17:06 수정 2018-10-24 21:36

사립유치원 등이 종합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일명 ‘지입차’를 통학버스로 불법 활용하고 있다. 정부 지원금을 빼돌려 명품을 사는 등 총체적 ‘회계 비리’로 욕심을 채우면서 영세업자 차주(車主)들에는 최저임금 수준에 못 미치는 최소한의 비용만 지불하고 있다.

24일 유치원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사립유치원 등이 버스 구입비와 운전기사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관행적으로 불법 ‘지입차’를 원생들의 통학버스로 사용하고 있다.

6000만~7000만원대 25인승·35인승 버스를 소유한 차주들은 운전 인건비와 기름값, 보험료 등으로 종일반·반일반, 운행횟수·거리에 따라 매월 총액기준 1대당 220만~270만원을 ‘지입료’ 또는 ‘월세’ 명목으로 받는다.

사립유치원 등이 불법 지입차를 선호하는 것은 차량 사용연한이 10년인 탓에 매년 600만~700만 원의 감가상각이 불가피한 버스를 따로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를 직원으로 채용할 경우 4대 보험료를 포함한 인건비 지출이 만만치 않은 점도 지입차를 선택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사립유치원 등은 더구나 운전기사를 겸한 차주들에게 월 4회 안팎의 유치원생 야외학습 때도 반드시 통학버스를 제공토록 계약을 맺는 ‘갑질’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입차는 유치원·어린이집 상호를 새기고 운행하지만 실제는 개인 소유인 자가용 차량을 말한다.

지입차주는 통상 유치원 1%대 본인 99%의 비율로 차량등록을 한 뒤 지입차 운행을 하고 있다.현행 운수사업법은 어린이 안전을 위해 전세버스 등 지입차의 통학운행을 금지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역시 유치원 어린이보호차량은 반드시 11인승 이상 승합차로 색상은 황색이고 어린이 기준에 맞는 보호시설을 갖춰 경찰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상당수 영세차주들이 한 푼이라도 더 수익을 챙기기 위해 의무적 책임보험 외에 인명사고에 대비한 종합보험을 꺼리고 있다는 현실이다. 날마다 버스에 오르내리는 취학 전 유치원생들이 보험혜택이 제한적인 통학버스 운행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만일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유치원생들에게는 일정 금액의 책임보험 외에 필수적인 의료비 등의 추가 지급은 불가능하다.

지입차주 김모(49)씨는 “오전·오후에 3회씩 하루 평균 70~80㎞ 거리를 운행하고 한 달 220만원을 받는다”며 “치솟는 유류비와 보험료, 감가상각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월급으로 건지는 금액은 한 달에 100만원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지입차주 송모(56)씨는 “적은 보수에 시달리다보니 수년전부터 제대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게 됐다”며 “‘유상운송특약’도 들지 못해서 사고가 나면 전세금이라도 빼야할 지경”이라고 실토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 절반 이상은 불법 지입차를 운영비 절감차원에서 통학버스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가 보험가입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0년 경력의 지입차주이자 운전기사 김모(55)씨는 “부인이 원장을 맡고 남편이 통학버스 운행을 담당하는 소규모 시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치원이 불법차를 운행한다고 보면 된다”며 “운전원을 유치원 직원으로 채용해 최저임금이라도 주는 경우는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제보내용에 따르면 2대의 통학버스(79무 56XX. 74거 54XX)를 무보험 지입차로 운행하는 광주 광산구 모 유치원의 경우 최근 1대가 접촉사고를 일으키자 물질적 보상책임을 지입차주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광주지역의 경우 전체 유치원은 사립 183곳 등 329곳이다. 자치구별로는 북구가 109곳으로 가장 많고 광산구 94곳, 서구 62곳, 남구 46곳, 동구 18곳 순이다. 여기에 영아를 돌보는 어린이집 1206곳까지 더하면 광주지역 전체 유치원·어린이집 1535곳에서 운행 중인 통학버스는 9~11인승 SUV승용차 등을 포함해 어림잡아 3000여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유치원 등의 불법 지입차 운행은 광주뿐 아니라 서울과 대전 등 대도시 위주로 각 시·도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전국 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학버스는 2~3만여 대로 추산된다.

유치원 학부모 오정길(38)씨는 “통학버스가 유치원 2~3곳과 다중 계약해서 그런지 아침마다 과속을 일삼는 것을 보면 너무 불안하다”며 “정부 지원금으로 호화생활을 하는 유치원 원장들의 배를 불려줄 것이 아니라 불법 통학버스 운행부터 개선해달라”고 주장했다.

사립유치원에 비해 국공립 유치원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광주지역 공립유치원 15곳의 경우 종합보험에 의무 가입한 통학버스 17대에 한해 1대당 연간 4000만원씩을 광주시교육청에서 인건비·기름값 명목으로 지원받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유치원운영지원 담당 정영미 사무관은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지입차 현황은 정확히 파악한 적이 없다”며 “불법실태가 드러나면 합당한 행정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