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병기’는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다

입력 2018-10-24 15:05 수정 2018-10-24 15:40

‘최종병기’ 이영호는 전설적인 모 박사가 뚝딱 만들어낸 완전체가 아니다. 23일 서울 대치동 프릭업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영호는 부상과 앞으로 계획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날 이영호는 김윤중과의 아프리카TV 스타리그(ASL) 시즌6 준결승전에서 3대 0 완승을 거두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영호는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윤중이형이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그걸 잘 살려서 이겼다. 윤중이형이 잘할 때 정말 잘한다. 그래서 ‘불안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안 말렸다”고 회상했다.

이영호는 ‘마이크로’와 ‘매크로’를 두루 갖춘 완전무결한 선수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연구로 승률을 더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날도 이영호의 치밀한 연구 흔적이 보였다. 그는 “테란이 업그레이드가 잘 되고 있을 때 프로토스를 조급하게 하는 방법은 옵저버를 잡는 것이다. 그러면 프로토스가 긴장하게 되고, 100이면 100 무리하게 들어온다”면서 “오늘은 무엇보다 프로토스에게 시야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이영호에게 ‘최종병기’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단순하다. 이영호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면 개인 통산 10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는다.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다.

그러나 이영호는 완벽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슈퍼컴퓨터가 아니다. 이영호는 현재 주사를 맞아 가며 대회를 소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어깨 쪽 부상이 심해져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는데, 그 쪽 팔에 다시금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팔이 굉장히 안 좋다. 수술을 다시 해야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라고 운을 뗀 그는 “다음 ASL 참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은 일단 주사를 맞으면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달 블리즈컨에서 ASL 우승자 정윤종과 KSL 우승자 김성현이 이벤트전 형태로 무대에 오른다. 이에 대해 아쉬움이 없느냐고 묻자 “비행기를 못 탄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영호는 2013년쯤 미국에서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경험을 하면서 고소공포증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이후 고소공포증이 심해졌다. 블리즈컨에 못 가는 것은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너무 멀어서 가기 힘든 상황이다. 1시간 정도 비행 거리는 식은땀 흘리면서 타는데, 그 이상은 도저히 못 탄다. 최근에 러시아 행사 들어왔을 때도 못 갔다”고 전했다.

이영호는 블리즈컨 무대에 오르는 두 선수에 대한 응원을 잊지 않았다. “두 분께서 해외 팬들께 멋진 게임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영호를 최종병기로 만든 확실한 한 가지는 승부사 기질이다. 데뷔 당시부터 지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그는 패배하지 않을 때까지 연습의 연습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영호 입장에서 과거 kt 소속으로 가장 잘 할 때의 자기 자신조차도 경쟁 상대이자 자극이다. 이번 김정우와의 결승전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창 올라온 김정우의 폼을 경계하면서도 그 이상 가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공언했다. “준결승에서 정말 잘 하더라. 경기 보면서 많이 놀랐다. 테란 입장에서 저그전이 편하지만 정우형은 결코 편하지 않다. 정말 잘 준비해야 될 것 같다. 그래야 그때(대한항공 스타리그) 꼴 안 날 것 같다”면서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상대의 강함은 이영호를 더욱 강하게 한다. 이영호는 걱정보다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쉽게 이길 생각은 처음부터 안 한다”는 그는 “빨리 게임하고 싶다. 재밌을 것 같다”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영호의 군 입대는 내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10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겠다는 각오다. 그는 “팬들이 정말 많이 기대하고 있다. 방심하지 않고 준비를 잘 해서 꼭 우승으로 보답하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