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에는 프랜차이즈 김태균이 있었다

입력 2018-10-23 17:05 수정 2018-10-23 17:13
사진=뉴시스

고참 프랜차이즈 스타의 어깨에 지워지는 짐은 무겁다. 부진과 부상으로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 많은 팬들은 우선 걱정 섞인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부진과 부상이 길어지면 이 시선은 비판으로 바뀌어간다. 때로는 부진한 팀 성적도 그들에게 원인을 묻는다. 가혹해 보이지만 리그에서 숱한 기록을 남기고 고액연봉을 받은 스타의 숙명이기도 하다.

한화 이글스의 기둥 김태균(36)은 올 시즌 많은 비판을 받았던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하나다. 롯데 지바 마린스를 퇴단하고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와 5시즌 동안 101경기 이상 출장하며 0.900 이상의 OPS(출루율+장타율)을 기록하면서 KBO 최고의 우타자로 군림했던 그다. 2001년 한화 입단 후 2년간의 해외 생활을 제외하면 모든 프로 생활을 한화에서 한 이글스맨이다.

그러나 어느새 30대 후반이 된 김태균은 정작 한화가 11년만의 가을야구에 진출한 올해 고난의 시즌을 보냈다. 자신의 통산 최저인 73경기에 출장해 0.834의 OPS를 기록했다.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던 2001년(0.709)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특히 지난달 23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 2사 만루 찬스에서 하체가 완전히 무너지며 엉거주춤한 스윙으로 삼진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큰 우려를 자아냈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한화의 4번타자로 남을 것 같았던 그는 올 시즌 6번에 기용되는 등 많은 부침을 겪었다. 그런 김태균은 결국 11년만의 가을야구 첫 경기에서 선발 제외됐다.

물론 한용덕 한화 감독이 그를 경기 마지막까지 벤치에 놔 둘리는 없었다. 한 감독은 0-2로 뒤지던 넥센 히어로즈와의 1차전 5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서 그를 대타로 내보냈다. 안타 한방이면 동점이 되는 중요한 승부처였다.

이글스파크에 모인 한화 팬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김태균의 타석을 바라봤다. 실투에 가까웠던 가운데 높은 초구를 흘려보낸 김태균은 바깥쪽 꽉 찬 2구마저 체크 스윙을 하며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날아온 3구. 스트라이크 존에서 크게 벗어난 유인구였지만 김태균의 배트가 공허하게 공기를 갈랐다. 김태균은 입술을 꾹 다물고 덕아웃으로 향했다. 이 모습을 마지막으로 김태균은 대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김태균이 없는 한화는 0승 2패로 벼랑끝에 몰렸다. 2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3차전. 어쩌면 올 시즌 한화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화에 김태균이 있었다.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한 김태균은 9회초 3-3 동점이던 1사 1루 상황에서 초구를 밀어쳐 우중간 펜스 앞에 떨어지는 2루타를 쳐냈다.

김태균은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 시즌 출루율 4할을 넘겼을 만큼 신중한 타자로 꼽힌다. 지난 1차전에서 초구를 보내는 장면은 그를 오랜 기간 봐 온 이들에게는 드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날의 김태균은 상대 투수 이보근의 가운데로 몰린 실투에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휘둘러 결승점을 만들어냈다. 2루 안착한 김태균은 굳은 표정으로 주루코치에게 암가드를 넘겼다. 김태균이 2루타를 날린 순간 고척스카이돔에는 그 누구를 향한 것보다 더 큰 환호가 울려퍼졌다. 그렇게 김태균의 손에 4028일만의 한화의 포스트시즌 첫 승리가 이뤄졌다.

프랜차이즈의 숙명은 가혹하고 짐은 무겁지만, 프랜차이즈는 그 숙명을 뚫을 수 있기에 그 자리에 있다. 적어도 이날 김태균은 자신이 한화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입증했다. 여전히 벼랑 끝에 몰려 있는 4차전, 김태균은 그에게 가장 익숙한 자리인 한화의 4번타자로서 경기에 나선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