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과 평행이론? 30년 전 월드시리즈와 비교해보니

입력 2018-10-23 13:38 수정 2018-10-23 14:11
미국프로야구(MLB) LA 다저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간 월드시리즈(7전4선승제)가 24일 오전 9시9분(한국시간) 막을 올린다. 이번 월드시리즈는 102년 만의 양팀 맞대결, 류현진의 제 2선발 등판 등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된 바 있다.

무엇보다 만약 다저스가 우승을 할 경우 1988년 이후 꼭 30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게 돼 팬들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전망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저스가 마지막 우승을 한 1988년과 현재 월드시리즈를 맞이한 상황이 묘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다분히 우연의 일치인 경우로 볼 수 있지만 30년을 기점으로 ‘비포 앤 애프터’ 비교를 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1988년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의 커크 깁슨이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올라와 오클랜드 어슬래틱스 마무리 데니스 애커슬리의 공을 받아쳐 기적적인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고 있다. 이날 승리를 바탕으로 다저스는 당초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오클랜드에 4승1패를 거두며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았다. 유튜브 화면 캡처

7차전 승부 후 최고 승률팀 조우

다저스(올 시즌 92승 71패)는 올해 내셔널리그챔피언십시리즈(NLCS)에서 내셔널리그 최다승팀인 밀워키 브루어스(96승 67패)와 7차전까지 혈전을 편 끝에 월드시리즈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반면 보스턴 레드삭스는 아메리칸리그챔피언십시리즈(ALCS)에서 디펜딩 챔피언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4승 1패 완승을 거뒀다. 보스턴은 올 시즌 108승 54패의 압도적 승률을 자랑하고 있다.

30년 전 상황도 마찬가지다. 1988년 당시 다저스(94승 67패)는 NLCS에서 내셔널리그 승률 1위 뉴욕 메츠(100승 60패)를 4승 3패로 누르며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아메리칸리그에서는 ALCS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4-0 스윕승을 거두고 올라온 그해 최강팀 오클랜드 어슬래틱스(104승 58패)가 버티고 있었다. NLCS에서 내셔널리그 최고승률팀을 7차전 끝에 물리치고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팀과 맞붙는 상황이 30년 전후가 똑같다.

체력적 우위와 전체 전력 면에서 아메리칸리그 우승팀에 우위를 예상하는 점도 같다. 당시 오클랜드에는 호세 칸세코, 마크 맥과이어 등이 핵타선을 자랑했고 최고 소방수 데니스 애커슬리가 뒷문을 꼭꼭 잠궜다. 올해 보스턴 역시 무키 베츠와 J.D. 마르티네스라는 아메리칸리그 타율 1, 2위 선수를 보유하고 있어 타력 면에서 다저스보다 낫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마무리도 ALCS에서 다소 흔들리긴 했지만 리그 세이브 2위인 보스턴 크렉 킴브럴(42개)의 존재감도 든든하다.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23일(한국시간) 25명의 전문가에게 질문 한 결과 20명이 보스턴 우승을 예상했고 다저스의 손을 들어준 이는 5명에 그쳤다.

1988년에는 첫 판부터 이변

1988년 월드시리즈 전의 예상은 1차전부터 빗나갔다. 당시 다저스 에이스인 오렐 허샤이저는 NLCS 7차전 등판으로 인해 나오지 못했다. 9회말 투아웃까지 3-4로 뒤지고 있던 다저스는 대타로 커크 깁슨을 낸다. 그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깁슨이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주루 플레이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다저스 토미 라소다 감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깁슨 카드를 밀어붙였다. 저승사자와 같은 애커슬리와 맞선 깁슨은 투스트라이크 쓰리볼에서 기적같은 투런 홈런을 날리며 경기를 끝맺었다. 깁슨이 홈런 친 후 누상을 절뚝거리며 도는 장면은 지금도 월드시리즈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된다.

허샤이저는 2차전 완봉, 5차전 완투승을 거두는 맹활약을 펼쳤고 결국 다저스는 4승 1패로 예상을 뒤엎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미친 활약 선수와 최고 에이스 필요

야구계에서는 월드시리즈나 코리안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서는 미친 활약을 하는 선수가 1명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988년에는 커크 깁슨이 바로 그 예였다. 깁슨은 그날 한 타석이 월드시리즈에 유일하게 출전한 타석이었다. 올해 NLCS 7차전에서 3점 홈런을 날려 승리를 가져온 야시엘 푸이그 같은 선수의 등장이 다저스에게는 필요하다.

허샤이저같은 특급 투수의 존재도 팀에게는 큰 힘이다. 명성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가 허샤이저의 위상에 가장 근접하다. 공교롭게도 커쇼는 허샤이저처럼 7차전에 등판했지만 다행히 1이닝 마무리만 소화해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 출전에 문제가 없다. 선발 매치업만 놓고 보면 30년 전과 달리 다저스가 밀리지 않는다. 1차전 승부가 월드시리즈 전체에 주는 영향이 큰 만큼 커쇼의 어깨에 팀의 명운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CS 7차전 치른 팀이 불리? 오히려 유리한 경우 많아

LA 다저스의 류현진(왼쪽)이 지난 21일(한국시간) 팀이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을 승리한 뒤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하자 라커룸에서 동료들의 샴페인 세례를 맞으며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통상 월드시리즈 직전 치르는 챔피언십시리즈(CS)에서 최종 7차전까지 경기를 치른 팀이 불리하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체력면에서 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치른 경기들을 보면 오히려 7차전 치른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 확률이 더 높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다저스는 NLCS에서 단 5경기만 치르고 올라온 반면,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뉴욕 양키즈와 7차전까지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체력적 열세를 딛고 휴스턴은 다저스에 4승 3패로 승리한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2007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CS에서 최종전까지 치른 뒤 상대리그에서 스윕승을 거두며 충분히 체력을 비축한 팀(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콜로라도 로키스)에 모두 4승 무패의 일방적 승리를 기록했다. 200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 역시 NLCS에서 뉴욕메츠를 4승 3패로 힘겹게 제쳤지만 정작 월드시리즈에서는 디트로이트에게 4승 1패로 가볍게 승리를 거뒀다. 디트로이트는 2006년과 2012년 모두 ALCS에서 4승 무패를 거두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각각 완패와 스윕패를 당하는 비운의 팀으로 남게 됐다.

2000년 이후 CS에서 7차전을 치른 팀과 그 전에 끝난 팀간 5차례 경기에서 쉽게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팀이 우승한 것은 200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뿐이었다. 필라델피아는 당시 NLCS에서 4승 1패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뒤 ALCS에서 4승 3패로 올라온 템파베이 레이스를 4승 1패로 가볍게 꺾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월드시리즈 같이 큰 경기의 경우 정신력과 경기에 대한 집중력, 절실함이 승부를 좌우하는 경향이 큰 만큼 단순히 체력면에서 우위인 팀이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전례는 다저스의 반전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커쇼와 류현진이 승리를 낚는다면 30년 전처럼 의외로 쉽게 월드시리즈를 끝낼 수도 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