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간 의료봉사의 길을 걸어온 구순(九旬)의 의사, 한원주(93·여) 매그너스 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의 삶이 전파를 탔다. 23일 오전 방송된 KBS1 시사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한 과장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1949년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고려대 의대 전신)를 졸업한 뒤 20년간 개인병원을 운영했다. 개업의로서 돈도 벌 만큼 벌었다. 그러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의 삶을 뒤바꿔놓았다. 그는 당시 “돈도 명예도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 과장은 잘 나가던 병원을 정리했다.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 원장에 취임해 도시의 영세민과 노숙인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을 돌봤다. 1982년엔 원내에 ‘전인(全人)치유진료소’를 개설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환자의 정서나 환경까지 치료의 영역에 포함했다. 국내외 기독교 및 사회복지 단체들의 후원이 이어지자 한 과장은 이를 환자들이 자립하는 데 필요한 생활비나 장학금으로 썼다. 월급도 없이, 개인 재산을 들여가며 어려운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
한 과장은 2008년 은퇴 뒤 경기도 남양주의 매그너스 재활요양병원에 둥지를 틀었다. 동년배인 환자들과 함께 건강강좌, 노래교실 등 친목활동을 펼치고 있다. 치매 환자가 가끔 짜증을 부려 일이 고되고 힘들지만 그는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외려 “힘들지 않다. 병 때문에 그런 것이다. 병에 걸린 사람을 돌보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고령인데 언제까지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엔 “나이 많다는 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의식할까”라며 “나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매일매일 즐겁게 살고 있다”고 했다.
한 과장은 지난해 성천상을 받으면서 수여된 상금 1억원도 기부했다고 한다. 성천상은 JW중외제약의 창업자인 고(故)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음지에서 헌신적인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의료복지 증진에 기여한 참 의료인을 발굴하기 위해 2013년 제정됐다.
그는 “항상 어디선가 돈을 주는데, 주면 나눠준다. 다 줬다고, 없다고 생각했더니 성천상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데서 상금을 받아 또 나눠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돈이 하나도 없다. 다 나눠주고, 요새도 기부할 수 있으면 다 기부한다”고 말했다. “사방에 나눠주면 기분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신 나는 돈을 쓰지 않는다. 지하철도 무료”라며 “애들도 알아서 잘 먹고 산다. 내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아버지가 의사였는데, 옛날엔 의사가 돈을 많이 벌었다. 큰 농장도 있고, 집도 몇십채나 됐다”며 “싹 다 사회에 환원했다. 집 하나 딱 놔두고 다 없앴다”고 말했다.
전형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