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다간 한국 영화제 다 망한다”… ‘을’의 외침

입력 2018-10-20 06:00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들이 화려한 레드카펫 뒤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금 체불은 기본이고 과다 업무, 시간외 수당 미지급 등으로 스태프들은 고통 받고 있었다. 단기 계약으로 인한 불안정한 노동 환경도 언급되고 있다.

지난 10월 13일에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고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단면에 보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들끓어 오르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경력 쌓여도 나는 ‘단기계약직’, 불투명한 미래에 앞길 캄캄

“당장 이번 계약이 끝나면 다음에도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제까지 단기계약으로 영화제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영화제에서 더 안 뽑아준다.”

“영화제 개최가 임박하면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다음에 일할 영화제 지원서를 쓰고 있다. 이번 영화제가 끝나면 난 뭘 해야 되지?”

■ 열악한 노동환경에 인력 유출, 남아있는 사람에게 업무 몰리는 악순환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일을 가르쳐 주는 것도 일이다. 기껏 가르쳐서 일 좀 시킬만하면 영화제는 끝나있다. 이렇게 계속 일 못하겠다고 떠나는 동료들 많이 봤다.”

“야근 수당이 없는 영화제의 속성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팀장급 스태프만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야근을 했다. 물론 소수의 상근직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가 단기 계약직이었다.”

■ “야근에 대한 선택권은 없었다” 나는 을(乙)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맡은 모든 영화를 다 검수하려면 야근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극장교육은 새벽 3~5시에 진행되기도 했다.”

“영화제의 턱없이 부족한 임금에 이의를 제기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사인했으니 그대로 일하거나, 그만두거나 중에 선택해라’ ‘여기가 다른 곳보다는 낫다. 너도 일 많이 배우지 않았냐’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영화제가 가까워져 오면 집에 못 갈 수준인데 어느 한 군데서 펑크가 나면 그걸 메꾸려고 야근을 누군가 해야한다. 야근하고 어떻게든 퇴근을 해도 집에가서 얼마 못자고 머리감고 바로 출근해야한다”

“추가 근무 비용 미지급은 당연하다. 업무도 과다한데 강제회식 동원에, 영화제 중 새벽까지 술자리에 동원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을 했다. 야근수당 같은 것은 없었고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전제로 스펙이 절실한 우리들을 선발해갔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과 청년유니온이 19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산 부족’을 말한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VIP 리셉션 비용으로는 1억8700만원을 쓴 것에 반해 개최기간 열흘 동안 스태프들의 시간외 근로에서 발생한 기본급 및 시간 외 수당 체불임금 추산액은 1억2400만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화제에 있어 화려한 레드카펫 볼거리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스태프들의 열정페이로 뒤범벅된 행사를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신혜 인턴기자
김나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