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를 노동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로 방송계 제작 여건이 개선될지 주목되고 있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한연노)는 19일 서울 영등포구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연기자를 노동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 “방송 연기자도 노동자다. 그간 협상을 게을리한 KBS 등 방송사는 연기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고, 방송사는 우리 노조의 출연료 협상 요구에 응하라”고 밝혔다.
한연노는 ‘이제 방송사가 답할 차례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7년을 끌어온 노조의 교섭단위분리신청 소송이 조합 측의 승소로 끝났다”며 “KBS 등 방송사들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조합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는 1988년부터 한연노와 출연료 교섭을 했으나 2012년부터 대표 노조와 교섭하도록 한 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 2‧3항을 근거로 협상을 거부해왔다.
이에 한연노는 소송을 제기해 교섭권이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대법은 지난 12일 방송연기자들도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고 이들이 속한 노조에 독자적인 단체교섭 자격이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한연노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교섭단위분리 재심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연노 소속 연기자들을 노동자로 본 이 판결로 한연노가 단체교섭 자격을 얻어 과거처럼 방송 3사와 연기자 대우와 관련한 교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KBS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로 교섭 단위가 나눠질 수 있다는 예상을 하고 있다”며 “구체적 상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기자들은 앞으로 노사 협상을 통해 미지급된 출연료를 받고 연기 여건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창곤 한연노 대외협력국장은 20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KBS가 새 노조법을 핑계로 그동안 노조와의 협상을 회피해 왔다”며 “다른 업계는 근로 여건이 정비되는 등 좋아진 데 비해 연기자들의 상황은 후퇴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협상을 하지 못한 지난 시간을 “잃어버린 7년”이라고 표현했다. 송 국장은 “영화계는 표준계약서 등이 어느 정도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방송계는 외주 제작사와의 불공정 계약이나 밤샘촬영으로 근로시간 미준수와 편성취소로 인한 피해 등을 여전히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노사 협상을 통해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19일 기자회견 후 열린 한연노 주최 정책토론회에는 노조 고문인 연기자 이순재를 비롯해 유동근 이한위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2013년 기준 한연노가 집계한 연기자 출연료 미지급 규모는 KBS 13억원, MBC 18억원, SBS 12억원으로 43억원에 달했다. 장영석 전국언론노조 법규국장은 “노조가 교섭에 나서 그동안 문제가 됐던 출연료 미지급, 밤샘 촬영, 표준계약서 이행 등을 적극적으로 다루게 된다면 출연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