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사우디 당국은 카슈끄지 실종 직후부터 모르쇠로 일관해오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자국 정보기관원의 개인적 일탈이라 주장하며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 바 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마다 해명을 바꾸는 일이 계속되고 있어 사우디 측이 이번에는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NYT에 따르면 사우디 왕실은 카슈끄지 살해 책임자로 아흐메드 알 아씨리 소장을 내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알 아씨리 소장은 2015년 예멘 내전 당시 사우디 주도 아랍권 동맹군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으로서 군부 내부 인사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사우디 지도부는 알 아씨리 소장이 빈 살만 왕세자의 지시를 잘못 이해했거나 월권행위를 저질러 카슈끄지를 살해했다는 식의 해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카슈끄지를 사우디 본국으로 압송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뿐, 살해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백악관 역시 관련 내용을 브리핑 받았고 알 아씨리 소장의 이름 역시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해명으로 지금까지 쏟아진 의혹들을 잠재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관측이 많다. 일단 이 해명은 빈 살만 왕세자 스스로 언론인 납치를 사주한 책임은 인정하는 셈이 된다. 또 알 아씨리 소장을 발탁해 고위직에 앉힌 사람이 바로 빈 살만 왕세자다. 알 아싸리 소장은 빈 살만 왕세자가 미국 측 인사를 접견할 때 종종 배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빈 살만 왕세자를 자주 비판해온 마다위 알 아시드 런던정경대 교수는 NYT에 “(카슈끄지 살해) 책임은 현재 사우디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인물에게 있다. 즉 빈 살만 왕세자”라고 주장했다.
카슈끄지 의혹을 두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처음으로 카슈끄지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NYT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해 둔다면 카슈끄지가 죽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며 “(이 판단은) 모든 곳에서 전해져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