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에서 성소수자들이 주도하는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수 있을까.
기독교단체와 5·18단체는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시민단체와 민변, 일부 정당은 찬성하며 광주 여론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와 5·18구속부상자회 비상대책위 회원들은 18일 오후 광주시청 3층 시장실 옆 접견실에서 이용섭 광주 시장을 만나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오후 2시쯤 광주시의회에서 퀴어문화축제 반대 기자회견을 마친 후 광주시청 3층 시장실을 찾아 이 시장과 면담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10시까지 접견실에서 이 시장의 입장표명을 기다렸지만 뚜렷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5·18 민주광장에서 ‘퀴어행사'가 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망월동에 묻힌 5월 영령들의 넋이 깃든 장소에서 패륜적 문화축제가 열리는 것을 막아달라. 동성애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과 시민과 국민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퀴어축제를 공개된 광장에서 허락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구분돼야 한다”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는 앞서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성명을 내고 “다른 지역 사례를 보면 퀴어축제는 성적으로 문란한 물건을 판매해 수많은 논란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개인적으로는 행사에 반대하지만 광주시장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사 개최를 물리적으로 저지하거나 반대의사를 공개 표명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반면 광주지역 30여개의 시민단체와 민변 광주전남본부, 정의당 광주시당 등은 기자회견과 논평 등을 통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는 모두가 평등한 대동세상을 꿈꿨다”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오월 영령이 잠든 광주에서 차별과 배제의 고통을 덜어내는 행사는 당연히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등 광주·전남 시민단체들은 18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이유로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허용돼서는 안 된다”며 “인권도시 광주에서 평화로운 퀴어축제가 개최되길 염원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인권·평화를 추구하는 광주야말로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모든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만일의 충돌을 우려해 행사현장에 15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등 오는 21일 행사를 앞두고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경찰은 찬반 단체의 충돌에 대비해 양측을 분리하는 완충벽을 5·18민주광장에 세우기로 했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특별한 하자가 없는 만큼 집회 허가를 내준 것으로 전해졌다.
‘퀴어축제’에 대한 찬반 여론 대립이 심화되자, 광주시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진퇴양난의 형국이지만 행사 개최 허가는 경찰 고유권한인 만큼 신중히 대처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광주퀴어문호축제 조직위와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는 19일 입장문을 내고 “광주시는 다양한 소수자의 인권을 알려내는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개최될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시가 지난 추석 직후 5·18민주광장 사용을 허용한 것과 달리, 뒤에서는 꾸준히 ‘시민의 안전’을 이유로 축제 장소를 변경해달라고 요구하고 사실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광주인권헌장 제 12조, 1항에 ‘모든 시민은 피부색, 종교, 언어, 출신지역, 국적, 성적지향 등에 관계없이 자신의 문화를 향유하고 자신의 종교를 표명하고 실천하며,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백히 쓰여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특히 ‘우리는 누구와 살고 있는가? 다양성, 포용 그리고 평화’라는 의제로 세계인권도시포럼이 열리는 광주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되도록 해달라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동체 광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시는 19일 오후 2시 정종제 행정부시장 주재로 퀴어축제 대책회의를 갖고 찬반 양측의 공방으로 인한 지역사회의 갈등과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 송상진 대변인은 “개인적으로 소수 약자들이 권익보장을 요구하는 행사를 개최하는 것에 대해 행정기관이 적극 개입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광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21일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1000여명이 참석하는 퀴어축제를 강행할 예정이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