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변했다면 만족한다” 불꽃페미액션 이가현이 거리로 나온 이유

입력 2018-10-19 04:00
뉴시스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거기에 만족해요. 뭐든지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과격하다는 말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거리에서 소리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KBS 스페셜 교양프로그램이 18일 방송됐다. ‘2018 여성, 거리에서 외치다’ 편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여성의 목소리를 전했다.

방송에 등장한 이가현씨는 올해 대학을 졸업해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여가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는 평범한 20대 여성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활동가다. 가현씨는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면서 6월 여성 반라 사진을 ‘음란물’로 간주하고 삭제한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였던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이날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10명은 마스크와 가면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상의를 완전히 벗고 페이스북의 조치에 항의했다. 이들 몸에는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한 글자씩 적혀 있었다.

가현씨는 방송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왜 여성의 나체는 맥락과 상관없이 무조건 음란물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상의 탈의 시위를 통해) 한 두 명이라도 용기를 얻었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걸로 만족한다”고 전했다. 이어 “여성은 신체 일부를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음란물로 취급됐지만 남성의 반라 사진은 그대로 게시 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건 되고 왜 우리는 안되는지 화가 났다”며 당시 시위 취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불법 촬영 문제가 여성들을 옥죄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겪는 공포, 성관계 영상이 촬영될 수 있다는 공포, 내 몸을 불법 촬영물로 만드는 사회에 대해서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니 그렇게 소비하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은 항상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싫다고 했다. 사회는 더이상 여성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키도 했다.

가현씨는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했다.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절이었다. 가현씨는 “난 어렸을 때 가족들의 기대를 많이 받으면서 살았다. 반항 한 번 해본 적 없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하지만 고등학교 들어오면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학교 건물에 글로벌 여성 리더의 산실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왜 글로벌 리더가 아닌 글로벌 여성 리더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여성이 사회적으로 차별 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가현씨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특별히 조심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6년 5월 발생했던 ‘강남역 살인 사건’을 언급했다. 20대 여성이 아무 이유 없이 강남역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다. 가현씨는 사망한 여성이 나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때문에 이건 조심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가현씨에게 ‘사회를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가현씨는 거리로 나왔다. 사회가 요구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여성 스스로 몸과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외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과정이 다소 급진적인 탓에 부작용도 많았다.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현씨는 이같은 지적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거기에 만족한다”며 “충격적인 사진,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자체가 진보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뭐든지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과격하다는 말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