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가해자로 의심 받던 어린이집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맘카페가 사람을 죽였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사건의 진원지로 지목된 김포 한 맘카페에서는 교사 추모 글이 이어지고 있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3만명이 넘게 가입된 이 카페에는 사건 이후 회원들의 탈퇴가 이어지고 있다. 카페지기는 탈퇴자들이 “슬프고 무섭다”는 쪽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18일 김포 장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포맘들의진짜나눔’(김진나) 카페지기 김모(47)씨는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기부하는 카페가 사람을 죽인 맘카페가 됐다”면서 “회원들이 신상정보 유출로 공포에 떨고 있다”고 밝혔다. 김포 통진읍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맘카페의 ‘마녀사냥’으로 희생됐다는 비난 여론이 고조되면서 심적 압박감과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중학생인 아들 등 가족에 대한 신상털이와 또 다른 마녀사냥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포 맘카페 사건은 지난 11일 오후 10시50분쯤 어린이집의 교사 A씨(37)가 원생을 학대했다는 글이 지역 맘카페에서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게시글은 “이날 어린이집 가을나들이 행사에서 아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돗자리 청소 중이라는 이유로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원생이 밀려 넘어졌는데, 교사가 아이를 일으켜 주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작성자는 원생 이모였다. 직접 목격한 장면이 아닌 전해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이었다. 그런데도 어린이집 실명과 교사 A씨가 담임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후 지역 맘카페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쪽지로 A씨 실명이 퍼졌다.
맘카페에 글이 올라온 지 이틀 만인 지난 13일 새벽 A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투신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유서가 발견됐다. A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A4용지 1장짜리 유서 안에는 “어린이집 원생 B군에게 미안하다. 다른 교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카페지기 김씨는 어린이집 실명이 적힌 게시물을 삭제하려고 했지만 이모가 “어린이집과 내통했냐”며 항의했다고 주장했다. 이모가 올린 글은 다음 날인 지난 12일 오전 9시쯤 블라인드 처리했다. 김씨는 “이날 아침 스태프로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 운영진 회의를 열고 회원들이 더는 볼 수 없게 했다”고 말했다. 이모 글은 A씨가 투신한 이후 삭제됐다. 김씨는 이모 글에 앞서 11일 오후 2시20쯤 ‘목격자’라는 제3자가 인천과 김포 맘카페에 글을 올리고 교사 실명 등을 공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김씨는 “회원들 사이에 공포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맘카페 글로 인해 불행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댓글을 단 회원들의 신상정보는 물론 아이들 사진까지 유출돼 고통받고 있다”고 울먹였다. 김씨는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고, 맘카페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 사건 전반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한 어린이집 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는 아이 이모의 글을 본 것은 12일 아침 9시였다. 글은 전날 10시50분쯤 올라왔다. 글에는 어린이집 실명이 공개돼 있었다. 교사의 신상을 묻는 댓글들도 달렸다. 후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일반 회원들이 보지 못하게 불량게시물로 분류하고 ‘블라인드’ 처리를 했다.
다음 날(13일) 한 회원으로부터 “글이 다른 커뮤니티로 퍼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13일은 어린이집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그날이다. 시스템의 오류인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해당 글은 회원들에게 노출돼 있었다. 이날 오후 해당 글을 바로 삭제했다. 그리고 “카페는 개인의 신상 노출을 금지하고 있다. 또 엄마들이 모인 카페이기 때문에 제3자인 이모가 글을 올려서도 안 된다”고 삭제 이유를 공지했다. 그러자 아이 이모는 “어린이집과 내통했냐. 내가 이모인지는 어떻게 알았냐”고 항의하는 댓글을 달았다. 댓글을 본 모든 회원들이 다 알고 있다.
- ‘김진나’는 어떤 카페인가?
‘김포맘들의 진짜 나눔’ 카페는 이윤을 추구하는 카페가 아니다. 회원들은 카페 안에서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카페지기는 회원들의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한 달에 10만원 정도만 개인 활동비로 활용한다. 카페 개설 후 지금까지 3년 동안 꾸준히 김포 사회종합복지관에 기부를 하고 있다. 일년에 두 번 ‘엄마들의 플리마켓’이라는 행사를 열어 모든 수익금을 기부한다. 행사에 쓰이는 물품의 일부는 김포 인근 마트에서 제공한다. 물품를 대가로 한 홍보홛동은 일절 하지 않는다. 김포시로부터 ‘기부상’을 받기도 했다.
- 지금 심정은 어떠한가?
제일 힘든 것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모인 회원들과 가족들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를 비롯해 처음 댓글을 단 20명의 회원들은 아이의 얼굴까지 많은 신상 정보가 노출됐다. 어머니들은 아이가 공격당하면 버티지 못한다. 한 회원은 약을 먹고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카페지기는 착한 일 하려고 모인 회원들을 보호해야 한다. 회원들은 정말 순수한 사람들이다. 돈 벌자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아이가 노출될까봐 두렵다”며 탈퇴한 회원도 많다. 한 회원은 카페를 탈퇴하며 저에게 “언니 저 너무 무서워요. 저 때문에 선생님이 죽은 거죠”라고 쪽지를 보냈다. 저를 포함해 많은 회원들이 고통 받고 있다.
- 운영진이 사건과 관련된 글을 삭제하고 추가 회원가입을 막았다는데.
저는 카페 회원들이 다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 “어린이집 관련 수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건 관련 모든 글은 다 삭제하고 추모는 조용히 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공지했다. 회원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후 회의를 통해 “사망한 선생님만 생각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현재는 수많은 추모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 앞으로 카페 운영 방안은?
카페를 닫는 일은 없을 것이며 평소처럼 좋은 일을 할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애도와 함께 회원들과 카페 재정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현재까지 “자극적인 댓글을 막자” “업체명 노출을 막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만 앞으로 1년 동안은 추가 회원모집을 하지 않을 것이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충분하다.
정지용 기자 박태환 인턴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