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이 ‘임요한’… 19억원 투입된 e스포츠 명예의 전당, 부실관리 도마 위

입력 2018-10-18 11:03 수정 2018-10-18 11:32
16일 명예의 전당 전시관 모습.

한국의 e스포츠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취지로 시작된 ‘e스포츠 명예의 전당’ 구축 사업이 19억원의 국고지원금이 투입되고서도 부실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실에 제출한 ‘e스포츠 명예의 전당 건립 사업 현황’에 따르면 명예의 전당 전시관 구축 및 e스포츠 자료 연구에 총 19억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이 중 아카이브(기록보관소) 자료 수집 및 연구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이 사용됐다.

명예의 전당 전시관은 지난 8월 개관 당시부터 주요 선수의 이름과 닉네임이 일치하지 않는 등 부실한 자료 수집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지만 개관 2달여가 지난 지금도 명예의 전당 전시관의 오류는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지난 16일 전시관을 직접 찾아 확인한 결과, 포토존의 ‘임요환’은 ‘임요한’으로 잘못 기재돼 있고 반복 상영되는 영상에서 ‘홍진호’는 ‘홍준호’로 잘못 나오고 있었다. 손을 대면 관련 게임 영상이 상영되게 만든 시설물은 고장 상태로 방치 중이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진흥원 측은 지난 5~6월 시범개관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평균 45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내데스크 직원은 “하루에 10~20명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손을 대면 영상이 나오게 되어있는 시설물이 작동하지 않아 테이프로 막아 놓았다.

아카이브 데이터 오류는 전시관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개관 당시 처참한 수준의 데이터베이스 관리 상태로 거센 비난을 샀다. 기준에 맞지 않은 인물이 헌액되는가 하면 일부 선수 정보는 엉뚱하게 적혀 있었다. 어떤 선수는 한창 부진할 때 조롱의 의미로 붙여진 별명이 삽입되기도 했다. 팬들의 반발이 커지자 홈페이지가 임시 폐쇄되는 등 극단의 처방이 내려졌다.

명예의 전당 사업이 부실 운영되면서 애초 구축 사업자를 잘못 선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6년 명예의 전당 구축을 위한 위탁사업자로 A업체를 선택했다. 이 업체는 2년간 총 9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아 사업을 추진하다가 올해 돌연 자취를 감췄다. 17일 기자가 직접 찾아간 A업체 소재지에는 전혀 다른 업종의 새 사업체가 들어서 있었다. 등록된 연락처는 없는 번호로 나왔다.

A업체 사업 소재지의 우체통. ‘이XXXXX’라는 전혀 다른 업체명이 적혀 있다. 사무실 직원에게 A업체에 대해 묻자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전시 및 행사대행에 특화된 A업체는 지금껏 e스포츠 관련 직무를 맡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콘텐츠진흥원은 A업체의 사업이해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입찰 당시 평가위원 7명 중 2명이 사업이해도 15점 만점을 줬다. 4명은 14점을 부여했고, 1명이 13점을 줬다. 평균을 내면 14.14점이다. 경쟁사였던 B(11.42점), C(13.28점)업체 대비 상당히 높은 점수다. 총 점수에선 A업체가 82.14점을 얻어 B(71.14점), C(76.57점)업체보다 크게 앞섰다. 이후 A업체는 e스포츠 아카이브의 바탕이 될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2년간 전담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순수 자료 수집 및 연구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이나 사용했다. 진흥원에 따르면 아카이브 구축은 e스포츠 산업 및 관련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회의, 그리고 e스포츠 명예의 전당 운영·선정위원회 등 위원들의 합의를 거쳤다. 2017년 4월 24일부터 무려 14번의 회의가 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5월 시범 운영과 함께 수차례 전문가 검토 및 수정작업을 거쳤다고 밝혔지만 자잘한 오류가 지금까지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조금만 e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현업 종사자가 상시 참여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이동섭 의원은 “한국 e스포츠 역사는 곧 세계 e스포츠의 역사다. 그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아카이브 사업을 이렇듯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한 것은 종주국 위상에 먹칠을 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